['노사' 글로벌스탠더드로 가자] (1) '선진국은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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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의 힘은 협상능력이지 투쟁의 강도가 아니다.'
지난 1970년대 극심한 노사분규로 '영국병'을 앓았던 영국이 얻은 귀중한 교훈이다.
과격한 투쟁보다 협상을 선택한 노조 덕분에 영국의 노사관계는 남부러움을 살 만큼 안정적이다.
실제로 영국은 유럽연합(EU) 회원국중 노조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 시간이 가장 적다.
영국 투자유치청(Invest UK)에 따르면 지난 95년부터 99년까지 5년간 근로자 1천명당 근로손실시간은 25시간으로 EU의 평균 55시간에 비해 절반에도 못미친다.
3백시간을 넘는 덴마크와 비교하면 10의 1도 안된다.
이는 80년 마가렛 대처 전 보수당 총리가 노조를 강력하게 압박한 정책이 어느정도 영향을 미친게 사실이다.
당시 대처 총리는 석탄 노조파업이 대규모 장기전에 들어가자 충격을 받고 노조활동을 불법화했다.
파업 찬반 우편투표와 동조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근로자들의 노조 가입을 의무화한 클로즈드숍을 금지했다.
파업현장의 피케팅까지 7개로 제한했다.
80년대 이후 영국 노조의 파업 결의권과 활동범위가 계속 위축돼 온 것은 사실이나 영국의 낮은 파업률이 노조 무력화 때문이란 주장에는 노조가 동의하지 않는다.
파업률이 낮다는 것은 문제가 확대되기 전에 협상을 통해 타결점을 찾아낸 결과라는 주장이다.
영국 두번째 규모의 상급 노동단체인 아미쿠스(AMICUS MSF)의 로저 라이언즈 위원장은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한 성숙한 협상문화가 그 해답"이라고 강조했다.
극단적인 투쟁없이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협상문화는 서로가 필요로 하는 파트너라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임금협상에서는 사측이나 노조 어느쪽도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이거나 비현실적 억지가 없어 협상에 임하기도 전에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네덜란드 남서쪽 덴 헤이그 60번가.
네덜란드를 유럽의 '작은 거인'으로 성장시킨 발원지이자 노사협상의 총본산이다.
바로 네덜란드 노사정위원회(SER.Social Economic Council) 건물이 자리잡은 곳이다.
SER에서 합의.제시된 임금인상률 등은 노사가 믿음을 갖고 따르는 사회적 계약이다.
SER가 부각된 것은 노사정 합의를 통해 네덜란드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우등국가로 거듭났기 때문.
1970년 로테르담항 파업, 72년 악조사 파업 등 물류와 대기업 노조의 대규모 노사분규는 80년대초까지 네덜란드 경제를 모래늪으로 밀어넣었다.
설비과잉 탓에 제조업체 25개중 한개꼴로 도산했으며 한달마다 1만명씩 실업자가 쏟아져 나와 실업률이 12%까지 치솟았다.
81년부터 83년까지 4년간 일자리에서 쫓겨난 사람만 30만명에 달했다.
GDP성장률은 81년 마이너스 0.5%, 82년 마이너스 1.2%를 기록할 정도로 최악이었다.
그러던 네덜란드가 82년 '임금인상 억제, 노동시간 단축, 임금보다는 고용중시' 등 노사정 합의를 이뤄냈다.
노사정 대표들이 '임금억제를 통한 고용창출'에 합의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노조측은 임금인상 억제, 임금 물가연동제 시행유보 등을 받아들였고 사측은 노동시간 5% 단축, 노동기회 재분배로 고용창출(Job Sharing) 등을 수용했다.
이후 네덜란드는 90년대 들어 경제성장, 고용창출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렸다.
3∼4%씩 경제가 성장했고 실업률은 5% 이하로 뚝 떨어졌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일본노동조합 총연합.
다나카 유리 국장은 70년대 일본이 빈번한 파업으로 인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물어야 했던 시절 이후 노사협상 문화가 왜 바뀌게 됐는지를 조목조목 얘기했다.
그는 "당시 집단투쟁을 통해 임금을 대폭 올리면 노동자들에게 단기적으로는 이익이었으나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영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요즈음 일본 굴지의 기업 노조들이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고용이 보장된다는 신뢰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경영자측에서도 순간의 이익을 추구하는게 아니라 장래 비전을 갖고 노동자들과 협상에 임한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고 있다"고 덧붙였다.
런던.헤이그.도쿄=강혜구.김홍열.김형호 기자 bellissim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