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 대학교수 한 분의 주소를 확인하다 양로원이라고 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수원의 한 실버타운이었는데 유료 노인복지시설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탓에 당황했던 것이다. '자녀들과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 온갖 상상을 다한 그곳이 실은 호텔식 주거시설인 걸 안 건 그 댁을 방문한 뒤였다. 몇년 전만 해도 이처럼 생소하게 느껴지던 유료 실버시설이었지만 최근엔 사정이 달라졌다. 자식들과 같이 지내느라 서로 눈치를 보는 것보다 의료 및 문화시설이 잘된 곳에서 편안하게 노후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까닭이다. 건립장소 또한 과거에 짓던 공기 맑은 시골에서 교통 좋은 도심으로 바뀌었다. 나이 들수록 외로움을 더 타는 만큼 자식들과 친구들이 언제든지 올 수 있고 외출하기도 좋은 곳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국내에선 대장ㆍ항문 전문인 송도병원에서 시작한 서울시니어스타워와 삼성에서 운영하는 용인의 노블카운티,수원 유당마을 등 고급시설을 중심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미국에선 최근 '캠퍼스 노인촌'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학교 근처에 살면서 강의도 듣고 학생들과 어울려 미식축구나 공연을 관람하는 등 젊게 생활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작용, 인기를 끈다는 것이다. 65세 이상이 전체인구의 8%에 달하는 지금 노인복지나 주거문제는 더이상 모른 체 할 수 없는 사항이다. 자녀와 함께 사는 부모가 98년 54.6%에서 지난해 42.7%로 줄었다(2002 사회통계조사)거나 노인복지시설 입주 희망자가 매년 10%씩 증가한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지금은 자식들이 불효자 소리를 들을까봐 실버타운 입주를 꺼리지만 그런 풍토 또한 곧 달라질지 모른다. 그러나 근래 건립되는 고급시설의 경우 식사 빨래 같은 가사를 대행해주고 의료진이 대기하는 등 편리한 대신 입주보증금만 최소 5천만∼1억원 이상에 월 40만∼1백만원 이상의 생활비를 내야 하는 등 비용이 만만치 않다. 형편이 넉넉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한 이들을 위한 실버타운 건립이 활성화되도록 구체적 조치를 마련할 때다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