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3:41
수정2006.04.03 13:43
러시아가 최근 2∼3년 사이 세계 유명 브랜드들의 새로운 엘도라도로 부상했다.
웅가로의 경우 지난해 11월 러시아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다.
루이뷔통은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멀지 않은 황금 길목에 초대형 종합매장을 개장했다.
러시아에 가장 먼저 진출한 브랜드는 독일의 휴고 보스.11년 전 러시아에 첫 발을 내디뎠으며 현재 모스크바에만 17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휴고 보스가 단골을 위해 여는 '휴고 보스 어페어'라는 이벤트는 러시아 상류층의 사교클럽 모임으로 불릴 정도다.
모스크바 중심가는 파리의 아브뉘 몽테뉴나 뉴욕의 5th 애브뉴,밀라노의 몬테나폴레오네 같은 세계적 명품가를 방불케 한다.
내로라하는 유명 브랜드는 이곳에 다 모여 있다.
이브생로랑을 비롯한 일부 업체는 정기적으로 유럽 본사에서 현지 영업팀을 대상으로 세일즈 교육을 실시한다.
러시아 소비자들의 수준이 높아 명품을 사기 전에 상품의 가치와 컨셉트,생산과정 등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체제 붕괴 후 갑자기 부상한 러시아 신흥 부유층은 명품 소비에 관한 한 벼락부자의 추태를 보이지 않는다.
20세기 초반까지 계속된 귀족사회의 화려한 라이프 스타일과 고급품에 대한 취향이 아직도 부유층의 생활문화에 남아 있다.
제정러시아시대 황실 가족과 귀족들은 루이뷔통 트렁크를 들고 유럽을 여행하며 명품을 기념품으로 담아오곤 했다.
얼마 전 프랑스를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식 일정을 마친 후 세계 최대 명품 업체 LVMH그룹 소유의 보르도 포도주 산지를 찾아 최고급 포도주를 시음한 것도 러시아 상류층의 명품 선호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러시아는 분명 명품 황금시장이다.
그런데 러시아는 시장 개방을 명품산업 발전을 위한 기반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달 중 열리는 모스크바 국제사진축제에서는 1910년부터 1950년까지 파리에서 활동한 러시아 디자이너·모델들의 회고전이 열린다.
공산주의 장벽으로 고립됐던 구소련 시대에도 러시아인들의 재능이 유럽에서 인정받았음을 보여주기 위한 행사다.
신예 디자이너들의 재능을 무시하지 말라는 메시지도 포함돼 있다.
러시아 젊은 디자이너들은 외국 명품업체들의 자국 진출을 세계적 감각과 마케팅 노하우를 배우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유럽 패션계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러시아 디자이너 발렌틴 이오우다추킨,데니스 시마체프,세레딘&바실리에프는 자국 시장개방 덕분에 국제적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디자이너들이다.
이들은 지난 1월 텃세가 심하기로 유명한 프랑스 오트쿠튀르 협회의 정식 초청으로 파리 컬렉션에 참가했다.
러시아 상류층 소비자들은 자국 디자이너를 후원하는 외국 브랜드에 대해선 호의를 표시한다.
이것이 외국의 유명 브랜드들에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세레딘&바실리에프가 순식간에 파리에서 스타로 부상한 것은 니콜라 드젠느 지방시 향수 사장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 명품 홍수에 밀려 국내에서조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한국 디자이너들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명품시장 개방을 자국 고부가산업 발전의 기회로 활용한 러시아인들의 지혜가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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