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예금 3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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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3대 특기(?)가 거짓말 몰염치 오리발이라는 얘기가 있다.
정치인은 무대에 선 매직쇼의 마술사처럼 사람을 홀리는 수완이 뛰어나,속지 않으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도 일반 국민은 영락없이 당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시냇물이 없는데도 다리를 놓겠다는 공약을 내놓을 만큼 뻔뻔스러운 사람도 정치인이라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엊그제 법정에서 행한 재산 명시 진술은 정치인의 특기를 또 한 번 확인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가 가진 재산이라곤 예금 30여만원이 고작이며 생활비도 모자라 자식들이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이 진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전직 대통령을 위한 불우이웃돕기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전 전 대통령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과거 행적을 보면 불신이 더욱 깊어갈 뿐이다.
지난 96년 비자금 공판 당시,그는 대통령이 된 뒤 돈을 받지 않으니 기업인들이 불안해서 잠을 못잤고 그래서 투자가 위축되고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돈을 받았더니 경제가 되살아나더라고 했다.
이만하면 궤변의 극치라 할 만하다.
추징금에 대해 측근들에게 토로한 불만은 더욱 가관이다.
"우리 검찰은 상당한 수준이다.
퇴임 후 그렇게 조사했는데도 뭐가 나왔으면 가만히 있었겠나.
전직 대통령을 그런 식으로 몰아붙여 인격과 도덕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잘못이다"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여전히 떳떳한 모습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욱 분노하는지 모른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부정축재 혐의로 검찰에 소환됐을 때 "뇌 손상으로 기억력을 잃었고 현재 너무 쇠약한 탓에 질문을 알아듣지 못해 증언할 수 없다"고 한 변명이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전 전 대통령은 측근들을 대거 골프장과 해외 나들이에 초대하고 손이 큰 것으로 소문 나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단돈 30여만원 정도를 가지고 있다니 마치 코미디를 보는 기분이다.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과 자라나는 아이들이 지도자에게서 무엇을 배울지 걱정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