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이라크 채무처리의 대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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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 정권이 남긴 대외 부채를 이라크 새 정부가 모두 갚아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하지만 한꺼번에 탕감해주는 방법 역시 올바른 해결책은 아니다.
때문에 프랑스 독일 러시아에 대 이라크 채권을 즉각 포기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무모한 것이다.
약 20억달러로 알려진 미국의 이라크 채권은 사실상 큰 규모가 아니다.
이런 미국이 이라크 채권 포기를 강요한다면 다른 채권국들로부터 '너만 손해보고 나는 손해보지 않겠다는 태도'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비롯한 미국 관리들이 이같은 제안을 한 것은 막대한 이라크 복구 비용과 미국 납세자들의 반발을 의식한 결과다.
미국의 주장은 증오의 대상이던 독재정권이 쌓아놓은 '불쾌한 채무(odious debt)'를 새 정부에 부담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쾌한 채무' 원칙을 이라크에 적용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실수가 될 것이다.
첫째,이라크 채권의 상당 부분을 가진 러시아도 따지고 보면 구 소련의 채무 부담을 고스란히 승계하고 있다.
러시아에 이라크 채권 포기를 요구하는 것은 미국의 자가당착이다.
둘째,이라크 채무 탕감에 대해 중동의 채권국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라크 채권의 75%를 갖고 있는 중동 국가들은 서방의 일방적 탕감 요구에 자신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의혹을 갖게 될 것이다.
셋째,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와 같은 대형 채무국들이 당장 이라크의 전례를 들어 채무 탕감을 요구하고 나설 수도 있다.
이라크 채무 처리의 대원칙은 이라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까지 채무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적당한 시기에 다자간 협의기구를 통해 처리하는 것이 순서다.
이라크의 대외 부채는 외채와 지난 91년 걸프전 배상금을 포함,줄잡아 3천5백억달러에 달한다.
이라크 경제 실상을 알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한 현 시점에서 이라크의 상환 능력을 판단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자간 협의기구에서 확립된 기준들을 토대로 상환 능력을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걸프전 배상과 관련,총 2백50억달러에 이르는 개인배상 부문은 이미 이라크 석유수출대금의 25%를 떼내 상환 중이고,정부 배상액은 유엔보상위원회(UNCC)가 중심이 돼 조정하면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제외한 정부간 부채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지원하는 경제프로그램이 일단 마련된 다음 국제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에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파리클럽은 기존 멤버 외에 동유럽과 러시아,특히 이라크 채권의 대부분을 갖고 있는 중동 국가들을 배려해야 할 것이다.
이는 중동지역의 정치·경제적 안정에 기여하는 효과도 있다.
이라크가 모든 채권국을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방침만 확정지으면,특정 국가가 참여를 거부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라크 채무 처리는 압제정권이 남긴 빚 처리의 새로운 국제 기준이 되는 만큼 신중하고 조용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든 채권국에 후세인과 같은 독재정권에 함부로 돈을 빌려줘서는 안된다는 교훈이 돼야 한다.
정리=우종근 기자 rgbac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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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에드윈 트루먼 미 국제경제연구소(IIE) 연구원이 파이낸셜타임스 28일자에 기고한 'The right way to ease Iraq's debt burden'이라는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