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배 째라'는 신용불량자..金秉柱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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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사이트에 뜬 글 가운데 세가지 유형의 신용불량자(이하 신불자)를 소개한다.
20대의 배 째라형: "현재 도피생활 하고 있습니다.
카드사 직원들의 사고처리,압류,형사처벌 등 꼬드김과 협박에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현재 갚을 돈 1억원 목돈이 마련될 때까지 '배 째라'식으로 나갈 것입니다.
주민등록말소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무도 몰래 돈벌이를 해 한달에 1백만원 정도 매달 대포통장을 이용해 저축하고 있고요.
빚진 1억원 목돈 마련되기까지 한푼도 주지 않을 겁니다."
역시 20대의 자포자기형: "대학 3학년 때 카드 발급을 받고 친구 어머님 도우려던 것이 카드 돌려막기 시초였죠.가슴 깊이 반성합니다.
일차적인 책임은 본인에게 있지만,정부와 금융회사들의 모럴 해저드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죽으려고 수면제를 다량 복용해 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시골 부모님과 의절한 상태입니다.
제 작지만 소중한 꿈은 모두 물거품이 됐습니다."
30대의 협박형: "신용카드는 이제 신용카드사들이 '알아서'하고 재경부와 금감위의 썩어빠진 관료들이 '적당히' 알아서 하게 놔둘 일이 아니다.
신용카드 복권 추첨,세금감면, 게다가 국세청 직원이 카드 안받는 업소 찾아다니면서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세원포착이 목적이었다면 직불카드 말고 왜 신용카드를 장려했었나."
부실가계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지난 3월말 현재 신불자가 2백95만6천7백94명에 이르렀다.
2월에 신규 신불자 발생이 주춤하더니 3월에 다시 가파르게 늘었다.
이것은 지난해 말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 축소로 돌려막기가 어렵게 된 이후 3개월 연체 요건에 따라 나타난 일시적 통계 현상으로 보이지만,문제의 심각성은 부인할 수 없다.
한국 금융의 후진성은 사회전반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솔직히 말하면 국민의 높은 사기(詐欺) 성향에 있지,낙후된 금융기법은 차후의 문제다.
1997년 경제위기가 재벌들 기업부문의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됐다면,이른바 'IMF 졸업'이후 정부의 내수부양정책 탓으로 빚어진 문제는 가계부문의 도덕적 해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가 대책마련에 착수,지난해 6월부터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 정책 효과가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는 데에는 다음 세가지 요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기불황의 심화가 첫째 요인이다.
신불자는 거개가 소비자이지만 영세 상공인들도 상당수 있다.
소비자는 돌려막기 돈줄이 막혀 안쓰고,상인은 안팔리니까 신불자로 전락한다.
악순환이다.
둘째 요인은 신불자의 대정부 게임이다.
반세기 한국 금융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비정상적인 특단의 조치들로 점철돼 있다.
8·3 사채동결 조치가 대표적 예이고,빈번했던 농가부채탕감도 그랬다.
지난 5년 간 구조조정 과정 이곳저곳에도 그 흔적들이 엿보인다.
신정부 출범 전후 신불자 간에 널리 퍼진 특단의 가계대출조치 기대감이 문제를 고질화시키고 있다.
젊은이들이 바른 경제교육 결핍증을 앓고 있다.
신용카드의 '신용'은 빚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외면해왔다.
셋째는 SK글로벌 등 돌발사태가 몰고 온 투신상품의 환매 요청,이에 따른 카드사 발행채의 차환발행 애로에 있다.
그러면 대책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경기가 깊게 가라앉지 않도록 하는 정책기조를 유지해야겠지만,무엇보다 긴급한 것은 지급결제수단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카드사의 유동성 위기를 넘기도록 대책을 강구하는 일이다.
정책당국이 마련한 4월 3일 조치에 비판이 없을 수 없다.
관치금융,사기업 옹호 등 반시장적이란 비판에 수긍간다.
그러나 긴박한 금융시장 상황,신용경색을 감안해 우선 줄이어 만기가 돌아오는 50조원 규모에 이르는 카드채 문제를 풀고 보아야 한다.
물론 카드업계의 차입축소 등 강도 높은 자구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약 3백만 신불자 중 1백43만명이 20∼30대들이란다.
정치도 경제도 감성으로 접근하는 이들 사회 초년생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조기교육'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우리 다음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바르게 단련시켜야 국민경제 백년대계가 바로 잡힌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