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월 이라크전쟁 북핵사태 등으로 불안감이 확산되자 '달러 사재기'에 나섰던 세력들이 환율 급락으로 낭패를 보고 있다. 또 원유 비축량을 대폭 늘렸던 정유사들도 이라크전 이후 되레 유가가 떨어져 울상이다. 이라크전이 예상보다 조기에 종결되고 북핵사태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이 커지면서 환율이나 유가를 잘못 예측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21일 한국은행과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금융.외환시장이 출렁거릴 때 기업 개인과 역외 투기세력들이 환율 급등을 예상, 달러를 공격적으로 사들이면서 거주자 외화예금이 급증했다. 외화예금은 지난 15일 현재 1백47억4천만달러로 작년 말(1백24억3천만달러)보다 23억1천만달러 불어나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지난 2월 말 1천1백93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3월말 1천2백54원, 이달 4일엔 1천2백58원까지 수직 상승했다. 서울 남대문시장 주변의 암달러상이 한때 호황을 누렸고 외국계 증권사들은 한술 더 떠 "원.달러 환율이 1천3백원까지 갈 것"이라며 달러 매수 심리를 부추겼다. 이 때만 해도 달러를 확보한 세력들은 짭짤한 환차익을 기대할 만했다. 그러나 4일을 정점으로 내림세로 돌아서 18일에는 1천2백3원으로 보름새 55원이나 급락했다. 이젠 달러 사재기 세력들이 거꾸로 보유 달러를 처분하지 못해 안달이 난 형편이다. 지난달 중순 이후 달러당 1천2백40원∼1천2백50원대에서 달러를 매집한 세력들은 달러당 40원 안팎의 막대한 손실을 봐 손절매도 여의치 못하다. 환투기 기미까지 보였던 역외세력들은 이달 들어 달러를 상당부분 털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들은 환위험 헤지를 했거나 최악의 경우 보유 달러를 수입 결제대금으로 쓰면 되지만 부화뇌동한 개인 투기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국제 정세나 가격흐름에 밝다는 정유사들도 발만 동동 구르기는 마찬가지다. SK㈜ 관계자는 "전쟁 직전엔 원유가격 상승이 예상돼 정부가 정한 의무비축량(40일)을 넘긴 50일분을 배럴당(두바이유 기준) 28달러선에 사들였다"며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배럴당 23달러선으로 떨어졌고 최근 국내 휘발유값도 ℓ당 50원 인하돼 재고로 인한 원가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LG칼텍스정유 관계자도 "전쟁이 언제 끝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비축량을 다소 늘렸지만 원유가격 급락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안재석.홍성원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