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보안관이라면 유럽은 술집 주인과 비슷한 처지다. 무법자는 보안관에게 총을 쏘지 술집 주인에게 총격을 가하지는 않는다. 사실 술집 주인이 보기에 힘으로 자신의 명령을 강제하려는 보안관이 경우에 따라 무법자보다 더 위협적일 수도 있다."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기금 수석연구원이 쓴 '미국 vs 유럽 갈등에 관한 보고서'(로버트 케이건 지음,홍수원 옮김,세종연구원,1만원)는 미국과 유럽이 왜 사사건건 갈등하는지 그 원인을 집중 분석한 책이다. 특히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더욱 격화된 이들의 대립 배경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미 국무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팍스 아메리카나'의 속내를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는데다 유럽쪽 시각까지 충실히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은 화성 사람과 금성 사람만큼 서로 다르다. 미국이 홉스적 사고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면 유럽은 칸트적 사고로 해답을 찾는다. 오늘날 미국은 국제법규에 의지하는 것보다 군사력의 활용에 더욱 무게를 두는 '무질서한 세계에서의 파워'를 즐기고 있다. 그러나 유럽은 파란만장한 과거를 청산하고 영구 평화를 실현하려는 단계에 들어섰으므로 미국의 그런 행태를 용납하기 어렵다. 카우보이 미국과 칼 한 자루 달랑 든 유럽이 숲속에서 곰을 만난 경우를 비교한 구절이 재미있다. "가령 무기라고는 칼 한 자루밖에 없는 사람은 숲속을 배회하는 곰을 용인할 만한 위험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곰을 찾아내서 제거한 다음 편안하게 살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보안관'인 미국은 스스로 무법천지라고 생각하는 세계에 때로는 총구를 들이대서라도 무법자를 제압하거나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가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판하는 것만은 아니다. '망치를 쥐고 있으면 모든 문제가 못으로 비치지만 망치가 손에 없으면 무엇이든 못으로 안 보인다'며 현실직시론을 내세운다. 유럽과 미국이 다같이 당면한 과제는 미국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새로운 현실에 다시 적응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거구의 깡패'(미국)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극복하고 거꾸로 그런 미국의 존재가 유럽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게 실질적인 이득을 가져온다고 본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