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2:55
수정2006.04.03 12:57
워싱턴DC의 대표적인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L씨는 요즘 일이 없어 울상이다.
고객들의 비즈니스 분쟁은 물론 새로운 사업확장 등에 필요한 법률자문으로 늘 바빴던 그였다.
하지만 두어달전부터 일이 줄더니,요즘엔 데리고 일하는 3,4명의 변호사에게 줄 월급을 걱정해야 할 정도라고 했다.
그의 고객중 미국 기업은 60∼70%,나머지는 한국기업들이다.
일거리 없기는 양쪽 기업 모두 마찬가지.미국 경제 부진으로 한국 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법률 자문업도 경기선행지수 성격을 갖고 있다.
기업들은 새 계약을 준비하거나 투자를 결정하기에 앞서 변호사를 찾는다.
그들과 미리 협의하는게 보통이다.
변호사들이 한가하면 그만큼 비즈니스가 위축됐다는 것을 뜻한다.
백화점 매출이나 자동차 판매 동향 역시 좋은 경기지표로 이용된다.
정부가 발표하는 실업통계나 성장률통계는 급변하는 경기동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통계가 잡힐 때 쯤이면 실제 경기는 이미 통계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통계 대신 다양한 실물지표들이 체감경기를 측정하는 도구로 활용된지 오래다.
한가로워진 L변호사도 어려운 미국 경제를 잘 보여주는 지표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밝은 미래가 곧 오리라고 낙관하지 않는다.
고객들과 접촉하면서 받은 인상으론 경기가 이른 시일내 회복되기 어렵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엊그제 일부 언론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비상경제대책을 마련중이라고 보도,법석을 떤 적이 있다.
통화량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경제회생계획을 강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실업자가 급증하고 항공산업이 사경에 있는 터라 주목을 끌 만했다.
그러나 FRB 부의장을 맡고 있는 로저 퍼구손은 지난 8일 이같은 보도를 부인했다.
중앙은행은 경제회복을 위해 늘 여러가지 방안을 생각하고 있지만 현 시점에서 비상대책을 마련하지는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FRB의 해명,일이 없어 안달하는 L변호사.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신음하는 미국 경제의 현주소를 보여준 케이스였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