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으로 위기 극복해 .. LG생명과학 신약 '팩티브' 개발 성공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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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생명과학이 퀴놀론계 항균제 신약 팩티브를 미국 FDA(식품의약국)로부터 승인받은 것은 국내 제약업계의 쾌거라고 할 수 있다.
LG생명과학은 팩티브 개발을 위해 지난 91년부터 12년동안 1백여명의 연구인력을 투입했다.
12년간 연구원들이 겪은 신약개발의 애환과 위기극복과정을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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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초 국내 제약업계에는 신약 개발이 막 유행하기 시작했다.
제약사들이 너도나도 신약 개발에 나서 증권가에서는 신약 개발 소문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LG생명과학(당시 LG화학)이 항균제 신약 팩티브 개발에 나선 것도 이즈음이다.
"미국과 유럽 업체들이 다루지 않으면서 개발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분야로 항균제를 선택했습니다.신약개발 경험이 적은 우리의 실정을 감안해 위험을 줄이자는 전략이었지요."(박순재 상무)
신약 개발은 그러나 처음부터 시련의 연속이었다.
도전 2년 만에 팀 리더가 사망하고 독성문제로 동물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
미국의 애보트(ABBOT)사(社)가 비슷한 신약을 개발하다가 부작용으로 개발을 중단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모두들 신약 개발에 회의를 품고 있던 1994년 희망이 보이는 일이 일어났다.
미국 보스턴대에서 합류한 홍창용 박사가 '옥심(Oxime)' 구조의 획기적 신약물질을 만드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옥심은 기존 퀴놀론계 항균제 사이프로플록사신의 구조를 변형시킨 독창적 구조의 화합물로 독성을 없앤게 특징.
문제는 약효였다.
독성을 제거했더라도 약효가 떨어진다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94년 4월25일.
연구원들이 휴가에 들어간 사이 홍 박사는 홀로 옥심의 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기존 항생제보다 그람양성균,음성균에 1백배 이상 뛰어난 약효 수치가 프린트 되어 있었다.
"Congratulations,We made it!"
홍 박사는 고생했던 연구원들의 책상 위에 큼지막한 메모를 남겼다.
이후 팩티브 개발은 순풍에 돛을 달게 된다.
그런데 임상2단계 이후의 엄청난 비용이 난제였다.
이에 회사는 세계적 제약회사인 스미스클라인비첨(SB)사와 전략적 제휴를 선택했다.
SB는 임상개발 기간을 최대한 줄여 조기 상품화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를 위해 40여개 국가에서 총 9천여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임상시험을 실시했다.
LG생명과학은 임상환자에게 임상샘플을 적기에 공급하는 한편 FDA 기준에 맞는 원료공장을 건설해야 했다.
공정개발과 공장건설은 남두현,김원섭(공정),손웅락(공장)박사팀이 맡았다.
휴일도 없는 강행군이 시작됐다.
팀원들의 노력과 SB의 컨설팅으로 LG는 결국 1차 신약허가 신청전인 99년 11월 공장을 완공할 수 있었다.
99년 12월.
LG는 SB를 통해 미 FDA에 신약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와 함께 공장실사를 받을 준비에 들어갔다.
실사준비는 김충렬 박사팀이 맡았다.
담당자들은 FDA의 일정에 맞추기 위해 새벽 3,4시에 사무실로 나와야 했다.
결국 2000년 5월 FDA의 실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쉽게 찾아 오지 않았다.
실사가 끝난지 6개월이 지난 2000년 12월16일 토요일.
비보가 날아들었다.
'퀴놀론계 항균제 팩티브에 대한 신약승인 불가.'
기대가 컸던 만큼 임직원들의 실망 또한 컸다.
더욱 힘든 것은 신약개발에 대한 회의론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재신청을 한창 준비중이던 2002년 4월, 제휴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합병전 SB)으로부터 공동개발 제휴를 철회한다는 통지가 날아들었다.
"당시 회사 분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사내외에서 여러 회의론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만 둘 수는 없었지요.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습니다."(김인철 상무)
양흥준 사장(당시 생명과학사업본부장)도 허가 자료에 대한 보완과 일부 적응증 조정 등을 통해 충분히 승산이 있음을 역설했다.
LG측은 새로운 파트너 선정을 위해 미국 및 유럽 50여개사와 접촉한 끝에 진소프트와 제휴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진소프트는 SB의 게리파토 수석부사장이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와 있었기 때문에 협상이 비교적 순조롭게 이뤄졌다.
문제는 제휴사였던 SB로부터 임상시험 결과와 해외 판매권 등을 이전 받는 일이었다.
이 업무는 GSK와 공동개발을 해온 제품개발 담당 추연성 상무와 해외사업 담당 박순재 상무,김성천 박사팀 등이 관여했다.
제품개발 담당자들은 GSK로부터 방대한 신약개발자료를 이전받아 진소프트에 넘겼고 해외사업 담당자들은 계약업무를 맡았다.
"다행히 GSK측은 매우 호의적으로 대해 주었습니다.신약승인을 받지 못한데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박 상무)
이후 추연성 상무는 GSK,진소프트와 화상회의를 하면서 약 10개월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미국과의 시차로 인해 회의는 주로 저녁 9시에 시작해 새벽 1,2시에 끝났다.
신약승인에 한번 실패한 LG생명과학은 마지막으로 신약전문 대행사를 활용하기로 했다.
전문컨설팅 업체를 활용하는 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LG생명과학은 2002년 10월4일 미국의 FDA신약승인 전문대행사인 파렉셀사를 통해 신약승인을 다시 신청했다.
A4용지로 총 10만여장의 연구 자료를 제출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03년 4월5일 오전 7시30분.
추 상무 앞으로 한통의 팩스가 들어왔다.
'팩티브 신약 승인.'
팀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12년동안 겪었던 고난과 역경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장욱진 기자 sorina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