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청문회 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무렵 의원회관으로 낯선 청년 몇 명이 찾아왔다.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기득권 세력과 싸우고 있던 종로의 '딸배'(신문배달원)들이었다. 이들의 간청으로 '딸배'들의 일터를 찾아간 노무현은 분노했다. 나이 어린 '딸배'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노예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7년 후 국회의원 및 부산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노무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왔던 '딸배'들의 지도자였다. 그는 "이제 은혜를 갚겠다"며 자원봉사자로 일했다고 한다. 해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해인' 1996년 3월호에 실린 이야기다. 불교계는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읽히는 '월간 해인'의 '유마의 방'이라는 칼럼에 소개됐던 이야기 24편이 '해인사를 거닐다'(옹기장이,9천원)라는 책으로 묶어져 나왔다. 노 대통령을 비롯해 리영희 윤구병 유홍준 교수와 판화가 이철수씨,이현주 목사 등 22명의 명사들이 삶 속의 깨달음을 털어놓았다. 동화작가 번역가 등으로 활동중인 이현주 목사는 자유롭게 뛰놀다 갑자기 줄에 묶인 '바우'라는 개가 단식 투쟁을 벌이자 이렇게 타이른다. "네가 내 마음을 죄다 알아서 들어갈 곳과 들어가면 안될 곳을 스스로 가린다면 내가 널 이렇게 묶어놓을 까닭이 없지." 그러나 이 순간 이 목사의 귀에 이런 음성이 들려온다. "네가 만일 내 뜻을 빨리 알아 무명(無明)의 그늘을 벗어버린다면 무슨 계율이 필요하며 무슨 가르침이 더 있겠느냐." 무명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생인 한 계율을 지켜야 하며 그것은 개를 '살리기' 위해 목에 묶어놓은 사슬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군사정권 아래에서 투옥과 구속을 여러 차례 거듭했던 리영희 선생은 감방에서 변기를 닦고 또 닦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무식한 소년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를 청하자 부처님은 매일 제자들의 신발을 닦으라고 했다. 소년은 겨울 내내 3백명이나 되는 수행자들의 신발을 티끌 하나 없이 닦았고 결국은 부처님의 제자가 됐다. 이 때 부처님은 이렇게 제자들을 가르친다. "못 배우고 못 깨친 소년이 3백 켤레의 신발을 티끌 한 점 없이 닦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의 거울에 티끌이 한 점도 없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선생은 감방의 변기를 윤이 나게 닦으면서 '마음의 때'를 닦아냈다고 한다. 소설가 이상문,신화전문가 이윤기,국악인 김영동,동화작가 권정생 등의 글도 부담 없이 읽을 만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