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장관들의 사표부터 받겠습니다. 그런 다음 장관은 차관의 사표를 받고,차관은 국장들의 사표를 받으라고 하겠습니다."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오쿠다 히로시 일본 게이단렌(經團連) 회장이 '쓴소리'를 했다. 일본정부가 유권자들과의 대화 폭을 넓힌다는 취지로 마련한 공개 타운미팅(시민 집회)에서였다. 카를로스 곤 닛산자동차 사장 등 다른 재계 인사들과 함께 참석한 그는 "당신이 총리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사표론'으로 포문을 열었다. 그는 기업의 돌아가는 원리에 빗대면서 말을 꺼냈다. "기업에서는 사장이 시키는 일을 부사장이 하지 않을 때 사람을 갈아치웁니다. 관공서도 마찬가지로 하면 됩니다. (총리는)장관들의 사표를 받아 보관한 다음 지시한 일을 하지 않을 때 목을 치면 되지 않습니까"라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스트레이트 화법으로 풀어놓는 그의 직설적 관료비판에 1천4백여명의 청중들로부터 박수가 쏟아졌다. 일본 언론은 오쿠다 회장의 발언이 '되는 것도 없고,안되는 것도 없는'고위각료와 정치권의 만성적 우유부단을 향해 쏜 화살이었다고 분석했다. 경제는 고꾸라지고,위기의 초침은 쉬지 않고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각료와 정치권은 이해득실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는 불만의 표시였다는 것이다. 언론은 특히 경제특구 신설문제 등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굵직한 사안마다 말꼬리를 흐리며 몸을 감춘 고이즈미 총리가 쓴소리의 1차 표적이라고 풀이했다. 오쿠다 회장의 발언은 재계 입장만 강조하고 국정의 실상과 어려움은 도외시한 단견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역없는 구조개혁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출범한 고이즈미 내각은 나라 경제가 내리막길을 달리는 순간에도 협의와 조율이라는 핑계를 방패삼아 수술은 뒷전에 미뤄 둔 채 외교적 구호와 제스처에만 열중하고 있다. 재계와 국민들은 목을 걸고라도 경제 위기와 싸우라고 주문하지만,지도자들의 마음은 미국을 좇아 이라크 전쟁터에 가 있는 모습.이야말로 정치와 경제가 따로 노는 고이즈미 정권의 한계를 보여주는 거울에 다름 아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