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가에 '정치'가 없다. 협상과 타협의 묘미가 있어야 할 정치판에 상호 비판과 욕설이 난무하고 있을 뿐이다. 11일은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82일째 되는 날.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아직까지 새로운 지도부 구성조차 못한 채 표류하면서 대화채널이 아예 단절된 상태다. 환골탈태를 외치며 추진했던 당 개혁은 기약 없이 표류하고 있다. 급기야 한나라당이 대통령과의 회동약속을 뒤집는 사태까지 야기됐다. 한마디로 정치부재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대선 후 여야의 대화부재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여야는 대북송금 사건에 대한 특검법 도입을 둘러싸고 팽행선을 달린 끝에 대화로 사태를 푸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야당이 특검법을 국회에서 단독처리하는 파행으로 막을 내렸고,이후 여야간 대화는 전면 중단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과의 직접대화에 나선 것 자체가 정치권의 대화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노 대통령이 여야에 정치적 타협을 주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협상테이블조차 마련하지 못함에 따라 노 대통령이 직접 담판에 나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야당이 보여준 행태는 정치부재 차원을 넘어 '정치도의'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은 10일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노 대통령과 박희태 대표대행이 당사에서 영수회담을 갖기로 합의해 놓고 몇시간만에 이를 뒤집어엎었다. 복잡한 당내 사정이 작용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하다는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야의 당 개혁도 표류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선 직후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지만 3개월여 지난 지금의 상황은 판이하다. 지구당 위원장 폐지(민주당)와 지구당 폐지(한나라당) 등 두 당의 개혁방안은 당내 반발에 막혀 채택될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다. 정치개혁이 실종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되는 실정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새 지도부 구성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시기를 놓고 힘겨루기가 한창이고,한나라당은 당권경쟁이 조기과열되는 등 양당 모두 개혁추진이 당초 의도와는 달리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