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로 빚은 '팬터지의 세계'..日아티스트 쿠사마 첫 한국나들이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수많은 대형 볼록거울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거울에 비쳐진 일그러진 모습은 감상자 자신이다.
'보이지 않는 인생'이란 제목이 붙은 미로 모양의 통로를 지나면 형형색색의 물방울 무늬가 그려진 대형 풍선들이 다가온다.
'뉴 센튜리'로 이름붙여진 이 방에 있다 보면 어린이 놀이방인지 전시장인지 헷갈리게 마련이다.
때론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환경미술을 선보인 작가는 일본이 자랑하는 현대미술 거장인 야요이 쿠사마(74).한국에서 처음 대규모 전시회를 갖는 그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전매특허인 물방울 무늬를 비롯 그물 거울 등을 이용해 캔버스의 경계를 넘어 오브제까지 확대되는 환경설치작품 10여점을 내놨다.
일본 나가노 출생인 쿠사마는 1957년부터 15년간 뉴욕에 머물며 도널드 저드,앤디 워홀,프랭크 스텔라 등 현대미술의 대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뉴욕 미술계의 아방가르드를 이끌었다.
성해방 반전운동 등 정치적 이슈들을 회화 조각 해프닝 퍼포먼스 환경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구현해 왔다.
미국의 조각가인 도널드 저드가 '상자' 시리즈로 유명해진 배경은 쿠사마가 제공한 아이디어 덕분이었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기도 하다.
1972년 도쿄로 돌아온 그는 77년부터 정신병원에 거주하면서 '쿠사마 스튜디오'를 개설해 현재까지도 창작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93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에 일본작가 최초로 초대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환영(幻影)에서 탄생했다.
쿠사마는 어려서부터 정신병 증세에 시달렸다.
어머니는 발작하는 딸을 가혹하게 다뤘다고 한다.
그가 물방울 무늬에 집착하고 있는 것도 강박증세가 빚어낸 결과다.
암실 같은 방에 거울 물 형형색색의 수많은 전구를 모아놓은 '물위의반딧불'은 예술을 자신의 환각증상을 치유하는 도구로 삼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6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비공식으로 참가한 작품인 '나르시스 정원'은 수백 개의 크리스마스 은색공을 바닥에 흩뜨려놓고 흔들리는 거울을 통해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어 냈다.
쿠사마는 "환경설치미술을 처음 시도했을 때 볼록거울에 비친 환상적인 무늬를 보고 졸도해 병원에 실려갔다"며 "그 느낌이 좋아 환경미술에 주력하게 됐다"고 말했다.
작가는 무라카미 류 감독의 영화 '도쿄'에도 출연할 만큼 괴짜인 것만은 분명하다.
5월11일까지.(02)733-8945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