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1:07
수정2006.04.03 11:08
[ 물리학연구 원조 '英 케임브리지大 캐빈디시硏' ]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자동차로 1시간30여분 거리의 케임브리지대학교.
전통이 물씬 풍기는 석조건물들 틈에 물리학과 연구실인 '캐빈디시 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다.
학생 4백여명에 교수가 2백여명에 이른다.
대학의 한개 학과치고는 엄청나게 많은 교수진이다.
20세기 실험물리학을 주도하며 학계를 이끌어 올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캐빈디시연구소는 설립이래 지난 1백30년동안 세계 과학사를 새로 쓸 정도의 획기적인 연구물들을 내놨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28명이나 배출하기도 했다.
백발의 노교수가 우산을 쓴 채 겨울비 내리는 캠퍼스 잔디밭을 느긋하게 가로질러 연구실을 향한다.
학생들은 잔디밭 주변에 깔린 보도블록을 따라 한바퀴 빙 둘러 연구실로 몰려간다.
정교수(professor)만 잔디밭을 밟을 수 있게 한 연구소의 오랜 전통 때문이다.
"학생들은 물론 정교수 이하의 조교수들도 불편하지만 인도로 다녀야 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습니다."(M 롱에어 케임브리지대 물리학 과장 겸 캐빈디시 연구소장)
전통과 규율을 얼마나 중시하고 존중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유행에 따라 연구분야를 이리 저리 바꾸는 다른 연구소들과는 달리 기초과학 한 분야만을 파고드는 것도 캐비디시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물리학과 교과과정은 자연과학 과목들로 짜여져 있다.
"신입생은 수학 물리 화학 생물 등 4과목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합니다. 물리학과 대학원 진학 자격은 4년 내내 물리학을 선택한 학생에게만 주어집니다."
물리학을 파고들 준비를 했는지, 자질을 갖췄는지를 확인한 다음 연구할 수 있는 자격을 준다는게 천체물리학 연구실의 리처드 새비지 군의 설명이다.
대학원생들은 연구분야에 따라 한 명의 정교수 아래 30~40명이 함께 공부한다.
캐빈디시 연구소는 교수간의 위계질서가 엄격하기로도 이름나 있다.
가장 높은 자리인 정교수 아래로 조교수(reader) 강사(lecturer) 보조강사(assisant lecturer) 등 6단계가 있다.
'교수'는 정교수만 쓸 수 있다.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2백여명의 강사진중 정교수는 11명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한 명은 캐빈디시 연구소의 얼굴 역할을 하는 석좌교수다.
"정교수는 연구와 관련된 학교내 모든 업무에서 막강한 영향력과 권위를 가집니다.
자신이 연구하려는 분야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학교측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습니다. 연구와 관련해서는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습니다."
리처드 프렌드 석좌교수는 연구팀의 의견을 믿고 꾸준하게 지원하는게 캐빈디시 연구소의 경쟁력의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물리학 연구의 본거지가 미국으로 옮겨가고는 있지만 캐빈디시 연구소는 여전히 세계 최고수준의 연구물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특히 스핀트로닉스(전자가 회전할 때 생기는 자석 성질을 이용해 새로운 반도체를 만드는 학문) 극저온물리 반도체, 고체물리 등에서는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
캐빈디시 연구소의 올 예산은 1천2백만 파운드(2백40억원).
대형 연구소의 예산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그런 데도 눈에 띄는 연구실적들을 쏟아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내로라 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연구소안에는 이들 기업이 기증한 연구동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글락소 네슬레 코닥 바스프 등은 이곳에서 공동으로 연구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일본의 대형 전자업체인 히타치전기는 캐빈디시 연구소의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 연구센터 안에 '히타치-케임브리지 연구소'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히타치는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 연구센터 연구비의 절반을 지원하고 있다.
캐빈디시 연구소의 독창적인 연구성과를 산업화하기 위한 산학 연계가 활기를 띠고있는 것이다.
"탄탄하게 다져진 기초 위에 실용적인 응용연구를 추가하면서 캐빈디시의 능력이 발휘됩니다."
캐빈디시 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는 이승백 연구원은 "유행에 따르지 않고 더디지만 꾸준하게 연구하는 학풍이 최대의 무기"라고 힘주어 말했다.
케임브리지(영국)=박해영 기자 strong-korea@hankyung.com
[ 협찬 :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