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0:59
수정2006.04.03 11:01
인기 개그우먼 이경실씨(36)의 폭행 사건으로 가정폭력 문제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가정폭력 상담 건수가 최근 들어 크게 늘어나는 등 가정폭력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정폭력을 범죄행위로 신고할 수 있게 한 가정폭력범죄 특례법이 지난 98년부터 시행됐지만 사법당국인 경찰이 가정폭력을 여전히 '사생활 문제'로 인식하는 등 안이한 대처를 하고 있어 실제 가정폭력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여성들은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가정폭력 증가세 =지난 11일 서울 구로구 모 빌라 3층 김모씨(43) 집에서 아내 이모씨(42)가 남편의 폭력을 피해 뛰어내렸으나 남편이 제때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방치하는 바람에 숨졌다.
같은 날 박모씨(59)도 장애인인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아내를 때려 숨지게 한 뒤 암매장해 경찰에 검거됐다.
하루새 두명의 아내가 가정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셈이다.
12일 여성부에 따르면 지난 99년부터 2001년까지 전국 가정폭력 상담소에 접수된 가정폭력 상담 건수는 지난 99년 4만1천4백97건에서 2000년 7만5천7백23건, 2001년 11만4천6백12건 등 매년 50% 이상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 중 신체적 폭력이 99년의 경우 66.4%, 2000년 55.0%, 2001년 58.8%를 각각 차지,정서적 학대나 경제적 학대 등 다른 유형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 안이한 사법처리 =그러나 이같이 가정폭력의 폭력성 정도가 심각한데 비해 상담 사례가 실제 고소.고발 등 사법처리로 이어진 것은 99년 1.9%, 2000년 1.8%, 2001년 2.6%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경찰에 신고된 가정폭력 건수도 상담 건수의 10∼20% 안팎인 99년 1만1천8백50건, 2000년 1만2천9백83건, 2001년 1만4천5백83건에 그쳤다.
이같이 상담 건수가 크게 증가하는데 반해 사법 당국 신고 건수가 적은 것은 피해자인 여성들이 사법처리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가정이 깨지는 데 대한 우려'로 가정폭력을 법적으로 해결하기 꺼리는 성향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경실씨의 경우도 가해자인 남편에 대한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은 사건 발생 사흘이 지난 뒤였다.
경찰은 "가정폭력범죄 특례법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사건을 처리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죄를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피해자인 아내가 남편의 처벌을 꺼릴 경우 경찰이 피해자 요청을 무시하고 법대로만 처리할 수 없는 애로가 있다"고 해명했다.
◆ 가정폭력 대책 =이문자 서울 여성의 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경찰 등 사법 당국의 가정폭력 대응 방식이 더욱 적극적으로 바뀌는 동시에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는 여성 자신들의 의식 변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향숙 서울 1366 여성긴급전화 대표는 "사회 전반에 폭력문화가 만연한 결과 여성들조차 주변에서 가정폭력을 목격해도 '맞을 짓을 했겠지'라며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 일이 아니더라도 신고하는 등 바깥으로 눈을 돌려 참여의식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