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11일 "현 시점에서 경기 부양책을 쓰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감세에 초점을 맞춘 6천74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안을 의회가 승인토록 로비해온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그린스펀 의장은 지난 2001년 의회가 승인한 부시 행정부의 10개년 1조3천500억달러 감세안은 지지한 바 있다. 그린스펀 의장은 또 이라크전 위협이 현재 미 경제에 최대의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면서 이처럼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져서 성장 경로를 판단하는 것이 특별히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이같은 불확실성이 감소될 경우 기업 투자가 활성화돼 전반적인 성장이 촉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린스펀 의장의 발언은 이날 열린 미 상원금융위원회 회동에서 이뤄졌다. 그는 FRB의 반기 통화정책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한 후 질의 응답을 통해 경제 전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린스펀 의장은 이라크전 위협으로 인한 불확실성 때문에 경제 기저에 깔려있는 실질적인 힘을 판단하기가 어렵다면서 그것이 가능할 때까지 경기 부양책을 쓰는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적정 수준의 재정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면서 이를 위해 지출 상한선을 정하고 지나치게 세금을 줄이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그린스펀 의장은 지난 46-64년에 태어난 이른바 `베이붐' 세대가 은퇴하는 시기가 다가온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이 때문에 사회보장비용이 급증할 것이라는 점을 행정부가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부시 행정부의 배당세 이중과세 폐지를 기본적으로 지지한다면서 그러나 이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법인세 정책이라는 측면에서 의견을 같이 하는 것일 뿐 단기적인 경기부양 효과가 있기 때문은 아니라고 말했다. 배당세가 폐지될 경우 재정에서 3천억달러 이상이 뒷받침돼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부시 행정부가 예상하는 재정적자는 2003회계연도에 이미 기록적인 3천40억달러이며 2004회계연도에는 3천70억달러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FRB 보고서는 미국이 올해 3.25-3.50%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같은 추정은 지난해 4.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치를 근거로 상정됐다. 지난해 전체 성장률은 2.8%로 잠정 집계됐다. 실업률의 경우 현재 5.7%인 것이 올해말에는 5.75-6.0% 수준일 것으로 예상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9%이던 것이 올해는 상대적으로 낮은 1.25-1.50% 수준에서 안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서는 내다봤다. 그린스펀 의장은 "산업 생산이 소폭이나마 계속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가계 소비도 여전히 활발하겠으나 기업이 본격적으로 투자를 재개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리지 않겠느냐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해 수익성이 개선되고 현금 유동성이 확보되며 전쟁 위협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그러나 재계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향후 금리 동향에는 언급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지난 41년 사이 가장 낮은 연방기금금리 1.25%가 올 여름, 어쩌면 올가을까지도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jks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