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게 경제교육을] 제2부.끝 : (10) '중국도 경제교육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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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北京)의 대학가인 중관춘(中關村)에 자리잡은 베이징사범대학 부속 중학교.
정규 수업이 끝나자 2학년 3반 교실에 갑자기 활기가 돋는다.
학생들이 모두 일어나 책상을 다시 정열하기 시작했다.
줄 지어 있던 책상은 서너 개의 원형으로 짜여졌다.
'재미있는 경제수업'이 시작된 것이다.
청바지를 입은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그가 맡은 과목은 '세계 상품 교역'.
선생님은 교단에 서자마자 학생들에게 시계를 풀어 보이며 "이 시계는 어디서 왔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 사이에서 백화점 재래시장 등의 답이 나왔다.
선생님 설명이 이어졌다.
"이 시계 줄은 비철금속 생산국인 말레이시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부속은 스위스 제품입니다. 중국인들이 이 부속품을 수입해 조립 생산한 것입니다. 제품 하나에 이렇게 많은 나라가 관련됩니다. 각 나라는 싸게 만들 수 있는 것을 생산해 다른 나라에 판 것이지요. 그게 바로 무역입니다."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무역 관련 수업 자료를 학생들에게 나눠 주고 세계 교역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학과가 끝나갈 무렵 선생님은 "왜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는지 알겠느냐"라고 물었다.
한 학생이 "세계 각국과 싼 가격의 제품을 더 쉽게 교환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답했다.
교육의 효과가 금방 나타난 것이다.
이 수업은 세계적인 청소년 경제교육 기관 주니어 어치브먼트 중국본부(JA차이나)가 주관하는 경제 학습 프로그램.
JA차이나가 파견한 자원봉사자의 수업시간이다.
이날 강의를 한 자원교사는 미국계 컨설팅업체에서 일하는 중국인 빈센트씨였다.
"중국 학생들은 어느 나라 학생들보다 빠르게 경제 지식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답적인 주입식 수업에서 벗어나 열린 교육을 통해 경제 지식을 얻는 것에 대해 많은 충격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빈센트씨의 설명이다.
JA차이나가 중국에 진출한 것은 1995년.
경제교육, 특히 자본주의 경제교육에 관한 한 당시 중국은 불모지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JA경제교육 브리핑을 받은 교육부 관리들은 의외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불과 며칠만에 사업 허가증을 발부했고, 가급적 많은 학교를 대상으로 교육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사회주의 국가 교육정책 담당자들이 자본주의 경제교육을 가르쳐 달라고 외국 교육기관에게 학생들을 맡긴 것이다.
JA차이나는 준비기간을 거쳐 3년 전부터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했다.
중국 교육부는 또 IBM 휴렛팩커드(HP) 모토롤라 등 중국 진출 외국기관 담당자에게 공문을 보내 JA차이나 활동을 위한 자금 지원을 부탁하기도 했다.
JA차이나의 켄트 반 스틴버그 본부장은 "중국 학생들은 경제 수업에 특이한 재주를 갖고 있다"며 "그들에게 비즈니스는 일종의 본성 같다"라고 말했다.
중국인 특유의 비즈니스 마인드가 깊숙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그는 "중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교육은 잠재해 있는 그 본성을 깨우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사대부중뿐만 아니다.
시장경제 경험이 얕은 터라 아직 초기단계에 불과하지만 중국의 주요 학교에서 자본주의 경제교육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학생들의 비즈니스 본능을 깨우려는 교육이기도 하다.
고급 관리 자제들이 다니는 베이징의 '명문' 사립학교인 징산(景山)중학.
이 학교 정치경제 과목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사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라는 제목의 과제를 냈다.
"광밍(光明)이라는 회사가 2억위안(1위안=약 1백45원)을 벌었습니다. 이 중 자재 및 운영경비 등에 9천만위안, 종업원 월급 주는데 7천만위안 정도가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4천만 위안은 어떻게 쓰는게 좋을까요. 이 회사는 은행과 어떤 거래를 할 것으로 봅니까."
정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변화하고 있는 사회주의 교육의 단면이다.
작년 말 열린 '사이버 회사경영 대회' 역시 변화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을 잘 보여준 사례.
HP가 주관한 이 행사는 5~6명이 한 조가 돼 온라인상에서 회사를 운영, 가장 많은 수익을 내는 팀이 우승하는 대회였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대회 참석자는 1백여명.
HP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이같은 대회를 벌이고 있지만 중국 학생들의 평균 수익률이 가장 높았다"고 말했다.
그 만큼 중국 학생들의 경제감각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중국이 개혁개방 노선을 걸어온지 20여년.
중국 학생들은 지금 마오쩌둥(毛澤東) 초상화 아래에서 자본주의 경제 학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