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고속인터넷 시장의 화두가 초고속디지털가입자회선(VDSL)이었다면 이로 인한 최대 수혜자는 단연 네트워크 장비업체다. 이 가운데 미리넷은 4차에 걸친 KT의 VDSL 장비 입찰을 연이어 따내며 전체 장비 시장의 60%를 차지했다.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리넷이 단숨에 업계 선두주자로 떠오른 이유다. ◆VDSL 장비 대박=지난해 초 KT가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의 후속타로 VDSL 시범 서비스에 착수했을 때만 해도 시장의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미리넷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초 KT와 계약한 장비 물량도 2만5천회선 분량,금액으로는 30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VDSL 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호응이 폭발하면서 수요가 급상승한 것이다. 미리넷은 추가장비 확보에 나선 KT의 2,3,4차 입찰을 거듭 따내는 성가를 올렸다. 공급한 장비 물량만도 55만 회선 분량.금액으로는 6백억원에 육박한다.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이에 힘입어 2001년 1백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6배가 넘는 6백50억원으로 뛰었다. 이같은 성공에는 철저하게 저가 보급형 장비로 승부를 건 전략이 주효했다. 재작년만 해도 20만∼25만원대였던 VDSL 장비 가격을 10만원대로 낮춰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 확실한 경쟁 요인이 됐다. ◆네트워크 분야 외길=이 회사 이상철 사장은 29살이던 1979년 다니던 한국통신을 그만두고 동아건설에 입사했다. 이후 15년 가까이 동아건설과 동아엔지니어링에서 일하며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대규모 정보통신 공사에 참여했다. 미리넷의 전신인 리엔지니어링을 설립한 것이 1993년. 따져보면 한국통신 시절까지 30여년을 네트워크 통신 설비분야에서 일해온 셈이다. 그래서 이 사장은 물론 직원들도 미리넷의 특색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줄곧 네트워크 통신 분야에만 집중해 왔다"는 점을 꼽는다. ◆기술력과 시장여건의 조화= 미리넷은 90년대 말부터 그동안 쌓아왔던 기술과 전문성을 집약,종합정보통신망(ISDN) 홈PNA 등의 초고속인터넷 솔루션 개발에 나섰다. 특히 막대한 연구비를 투입한 홈PNA 장비에 대해서는 네트워크 분야에서 갖고 있던 기술력을 집결한 만큼 기대 또한 컸다고 이 회사 조태석 상무는 전했다. 그러나 시장의 벽은 예상보다 높았다. ISDN 홈PNA가 잇달아 초고속인터넷 표준에서 밀려나면서 기껏 개발한 관련장비도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기술은 자랑할 만했지만 시장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은 '불운'의 결과였다. 이때 새로운 돌파구로 도전한 게 VDSL이다. 하지만 2000년에 의욕적으로 내놓은 VDSL 장비는 KT의 1차 테스트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 KT가 VDSL 서비스 계획을 무기한 연기하는 바람에 시장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이후 VDSL은 지난해가 돼서야 비로소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이때는 이미 미리넷도 별 무리없이 KT의 테스트를 통과할 정도로 기술력을 끌어올린 후였다. 시장 형성기가 됐을 때 적시에 수준급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던 행운 아닌 행운이 미리넷의 성장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장원락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