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다면평가제 잘될까..李成容 <베인&컴퍼니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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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면평가제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다면평가제를 공공부문에 적용하겠다고 발표해서다.
한 사람에 대해 상사 동료 그리고 부하직원이 평가하는 이 제도는 이론적으로는 최고의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다면평가제를 전면 도입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제대로 시행하기 어려운 반면 부작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컨설팅회사 회계법인 등 개인의 업무성과가 뚜렷이 드러나는 전문서비스업종에서조차 다면평가제를 활용해 실질적인 혜택을 얻는 기업은 많지 않다.
다면평가제 도입에는 다음 네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첫째,대부분 우리 기업들은 조직 구조상 다면평가제를 도입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연공서열이 뚜렷한 수직적 기업 조직에서는 동료를 직접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어렵다.
부하나 상사가 아니라,동등한 입장에서 팀을 이루어 함께 일해 본 경험이 없는 경우,또는 다양한 부서의 업무를 아우르는 '범기능적 프로세스(process)'가 없는 경우 동료간의 다면평가는 추상적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평가는 능력이나 성과가 아니라,평판이나 인기 등에 근거해 이루어지게 된다.
둘째,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지선다형 객관식 문제와 정답 아니면 오답을 강조하는 교육 환경 때문인지,대부분의 사람들은 주관식 평가를 할 때 지나치게 자신의 개인 경험과 가치관에 근거한다.
이는 대상 그룹이 동질성을 띠고,동일한 가치관과 배경을 지니고 있을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직원의 배경이나 생각이 다양해질수록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될 수 있는 일관된 가치 판단 기준이 꼭 필요하다.
셋째,인사목표치 수립과 보상이라는 두 측면과 평가가 하나의 포괄적인 인사 운영 사이클로서 상호 일관성 있고 정교하게 기획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면평가제가 유명무실해지거나 부작용을 낳게 된다.
개인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수준에서 기술된 구체적인 개인 인사목표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민간기업들 중 개인 수준의 구체적 인사목표치를 설정한 곳은 많지 않다.
목표치가 있는 회사들도 막상 그 내용이 막연해서 실제 평가의 측정 기준으로 삼기에는 주관적인 경우가 태반이다.
이 점에서 새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부문에서의 다면평가는 더욱 어렵다.
개인적 수준의 인사목표치가 명확히 정의되지 않으면,평가 과정에서 평가자 개인의 주관적 가치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함께 평가 결과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하는 문제,즉 보상이라는 측면 또한 중요하다.
평가 결과가 의미 있게 반영될 수 있는 차별화된 보상시스템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직원들은 다면평가제뿐 아니라 어떤 평가제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선진국 기업이 다면평가제를 시행하는 것은 개개 직원의 업무성과에 대한 포괄적인 관점을 얻기 위해서다.
다면평가제가 가장 효율적으로 쓰이는 것은 인센티브, 즉 기본급 외 성과급의 측정과 분배의 잣대로서다.
이런 면에서 1백% 기본급으로 운영되는 정부관료 조직이나 군대 조직 등에서는 다면평가제가 큰 의미가 없게 된다.
넷째,다면평가제가 시행착오를 거쳐 본래 의도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2회 이상의 평가 사이클을 거쳐야 한다.
이는 대부분 기업에서 2년을 의미한다.
특히 각 질문 항목의 미묘한 의미 차이가 평가자의 대답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평가 설문지를 설계하고 이를 보완하는데 상당한 작업과 현장 테스트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인사 정책에서 일관성이 없을 뿐 아니라,하나의 프로세스가 표준으로 정착되기도 전에 바꾸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노 당선자가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다면평가제를 정부 조직에 시도해보려는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다면평가제의 필요성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이 있다면,이를 매년 꾸준히 실시하면서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겠다는 의지를 갖기 바란다.
이렇게 꾸준히 노력한다면,임기 중반 이후에는 어느 정도 표준화된 프로세스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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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