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0:30
수정2006.04.03 10:31
28일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이종욱(李鍾郁.58) 박사는 이 기구에서 20년째 근무를 해온 백신 분야의 최고 전문가다.
이 박사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선출직 유엔산하 전문기구 수장이 되는 영예를 누리게 됐다.
지난 1983년 WHO 남태평양지역 피지에서 한센병 관리책임자로 근무를 시작한 이박사는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처 질병관리국장(1993∼94)을 거쳐 94년부터 WHO 본부예방백신사업국장 및 세계아동백신운동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이 박사는 1995년 WHO 백신국장으로 재직 당시 세계인구 1만명당 1명 이하로 소아마비 유병률을 떨어뜨리는 성과를 올려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으로부터 '백신의 황제(vaccine czar)'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97년 유명 테니스선수 마르티나 힝기스로부터 백신연구기금으로 7만5천달러 기부를 끌어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박사는 1998년 할렘 브룬트란트 사무총장이 취임한 이후 사무총장의 특별대표직을 시작으로 WHO의 정책부서를 두루 거쳤다. 2000년에는 결핵국장으로 자리를옮겨 북한에 6만명분의 결핵약을 공급하는 등 19개 국가를 대상으로 결핵퇴치사업을추진했다.
WHO결핵관리국은 연간 5천만 달러에 이르는 자발적 기여금을 모금하고 회원국간의 협의를 이끌어내는 것을 주요 업무로 삼고 있다. 직원은 100여명이다.
결핵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은 2000년에 에이즈, 말라리아와 함께 빈곤을 유발하는 3대 질병으로 널리 인식되면서 높아졌고 결핵국장인 이박사의 열성적인 활동도여기에 한 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박사의 당선은 1988년부터 10년간 WHO 사무총장을 역임한 일본의 나카지마히로시에 이어 아시아지역 출신으로는 두번째다.
평소 이박사는 WHO의 밀실행정 및 관료주의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으며 정치적힘에 의해 정책이 입안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에따라이박사는 'WHO 조직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개혁적인 공약을 내걸고 선거운동을 해왔으며 이러한 신선한 이미지와 다른 후보들보다 WHO에서의 경험이 앞선다는 점이 성과를 이끌어냈다는 후문이다.
이 박사는 선거운동 중 공약으로 WHO의 기금 확대를 내걸었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기구 운영을 통해 모금운동을 확산하고, 분권화를 통해 WHO 예산의 75%를 현장에서 질병과 싸우는 세계 6개 지역사무소에 배당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당선을 위해 보건복지부 등 정부는 외교적으로 총력지원을 했으며 국내 지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후원회도 힘을 보탰다.
이 박사는 특히 서울대 의대 선후배 사이인 김용익(서울대 의대) 교수와 김창엽(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와 절친하며 후원회 활동도 서울의대 동창회장 등이 적극나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박사 형제는 4남1녀로 동생인 이종오(50.전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씨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참여센터 본부장직을 맡아 활약하고 있으며 막내 동생인 이종구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도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종오 국민참여센터 본부장은 "형님은 성품은 조용하지만 끈기가 있어 어려운상황에서도 무언가를 이뤄내는 '의지의 한국인'이라며 '수영과 스키 같은 운동을 좋아하고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는 취미도 있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또 "예비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뒤 전화통화를 했을 때 '당선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76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이 박사는 대학 시절 내내 경기도 안양 나자로 마을에서 나병 환자를 위해 봉사 진료를 했다. 당시 가톨릭 신자로 봉사차 한국에 온 동갑내기 일본인 레이코 여사와 79년 결혼했다.
그뒤 하와이대에서 공중보건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83년 세계보건기구 남태평양사무소 나병 팀장으로 세계보건기구에 입문했다.
그는 제네바의 작은 아파트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으며 아들 충호(25)씨는 미국 코널대에서 전기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제네바=연합뉴스) 주종국기자 sat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