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재고가 사상 최대치에 근접할 정도로 늘면서 쌀 유통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 덤핑에 가까운 가격에 쌀이 팔리는 것은 기본이고 가짜 새쌀까지 나돌고 있다. 특히 묵은쌀을 처분하는 방법이 지능화되고 있다. 새쌀과 묵은쌀을 7대3 정도의 비율로 섞어 파는 것이 대표적인 혼탁 사례다. 농협유통의 한 쌀 바이어는 "지방의 사설 도정업자들이 새쌀과 묵은쌀을 섞어 파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이런 쌀이 덤핑가격으로 시장에 나오면서 유통질서가 문란해졌다"고 지적했다. 도정업자들은 묵은쌀을 새쌀로 보이게 하려고 다양한 수법을 쓰고 있다. 한 도정업자는 "묵은쌀을 도정해 기름을 덧칠하면 윤기가 나 새쌀처럼 보인다"며 "쌀 가공기술이 발달하면서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보지 못할 만큼 수법이 정교해졌다"고 말했다. 대형 유통업체들의 횡포도 심해졌다. 농협유통 관계자는 "할인점 하나가 개점할 때마다 5천만~1억원의 적자를 본다"고 하소연했다. 할인점들이 쌀을 '미끼상품'으로 내놓아 고객을 끌기 위해 터무니없는 가격에 공급해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농림부는 지난해 추수 직전 쌀 재고를 1천40만섬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유통업자들은 1천3백만섬을 넘어 적정선(9백만섬)을 50%나 초과했다고 주장한다. 쌀 재고가 늘면서 쌀을 원료로 사용하는 가공식품도 많이 나왔다. '하얀미소''미사랑 햇쌀''찹쌀선병'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쌀 가공식품도 재고 감축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 값싼 중국산 쌀가루를 들여와 쌀 가공식품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예 중국에서 쌀 가공식품을 생산한 뒤 들여와 판매하는 사례도 있다. 게르마늄 키토산 등을 첨가해 만들었다는 브랜드쌀들도 소비자 입맛을 돌리기엔 역부족이다. 쌀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도 소비자들이 브랜드쌀을 미더워하지 않는다"며 "인지도가 높은 몇몇 브랜드쌀을 제외하면 시장 입성이 어렵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