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고 하던가. 95년 보증을 서준 동종업체가 부도났다. 서로 맞보증 상태로 건설공제조합에 가입돼 있었기 때문에 20억원의 채무를 몽땅 뒤집어써야 했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다. 도대체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었다. 질경이처럼 일어서야 했다. 현장 공사팀만 남기고 3개조로 나누어 전원이 채무확인하고 채권자들을 만나 사정하고,공제조합에 애원하기도 했다. '공제조합이 아니고 공멸조합이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결국 공사를 대신해주기로 하고 채무상환연기에다 알토란같은 현금 6억원을 쏟아부은 끝에 회생할 수 있었다. 이후 우리 회사는 보증을 서지도 받지도 않는다. 이를 거울삼아 위기관리시스템을 강화하고 97년 연구실을 기업부설연구소로 격상시켰다. 이 연구소에서 3년동안 특허를 12개나 취득하는 성과를 올렸다. 본격적으로 R&D(연구개발)에 투자,중수도 시장에 대비하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 어떤 공법이 중수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지 예측하기가 어려워 유명한 세계 환경전시회를 모두 찾아다녔다. 마침내 UF 한외여과막(고밀도여과막)을 찾아냈다.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찾기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의 문을 두드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우리 회사 실정에 꼭 맞는 브니프사(社)의 여과막을 찾을 수 있었다. 브니프사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중수도 사업을 시작했다. 우여곡절끝에 우리나라 중수도에 한외여과막을 정착시킨 것이다. 이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우선 필리핀 마닐라에 지사를 설립하고 중국에 달청환경설비유한공사란 합자회사를 세웠다. 국내 시장은 거의 포화상태라 유지 보수를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해외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었다. 마닐라 지사에서 국제입찰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국제입찰에서 1등으로 통과돼 최종계약만 남겨 놓았다. 그러나 계약서에 최종 사인하기 직전 아로요 대통령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관련 공무원들이 교체되자 입찰은 무효가 됐다. 국제입찰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게 무엇보다 큰 수확이었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사명(社名)을 바꾸기로 했다. 설계 회사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던 것이다. 2000년 청우(靑友)네이처로 사명을 바꿨다. 환경업체라는 인식을 확고히 심어주기 위한 것도 있고 자신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20년,이제는 제대로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의 진짜 주인이 직원들이란 걸 깨닫는데 20년이 걸린 셈이다. 직원들이 위기를 공감하고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줬기 때문에 우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들을 위해 봉급과 일거리만이 아닌 문화를 선물하기로 했다. 올해 초 1주일에 독서 1권(연 50권),주3회 CNN 보기(연 1백50회)를 계획했다. 그리고 각자 1천억원짜리 매출 아이템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를 달성했을 때 그들은 분명히 바뀌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1천억원짜리 매출 아이템이 만들어지면 후배들에게 사업을 넘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