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냈다] 박명선 청우네이처 사장 (中) 또다른 파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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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했나했더니 또다른 파도가... ]
지난 81년,내 딴에는 누구보다 환경사업에 앞서 뛰어든만큼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청우엔지니어링의 오폐수 처리시설 사업은 1년이 넘도록 한 건도 수주하지 못하고 자본금만 바닥나고 말았다.
일감,자금,사람 중 항상 두 가지가 부족했다.
이때 5년간은 정말 '고난의 연속'이었다.
도움을 받지 않은 친지가 없을 정도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며 마음을 다잡고 난관이 닥치면 넘고,돌아가고,뚫고 나갔다.
문제는 수없이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등을 보이면 게임은 끝나는 것이다.
이렇게 정면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동안 조금씩 일거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무렵 한미은행에서 대리 한 사람이 찾아왔다.
거래를 트자는 것이었다.
은행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부담없이 그와 얘기하게 됐다.
허심탄회하게 애로사항을 얘기했더니 그 대리가 대뜸 "은행이란 기업을 도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게 아닌가.
어안이 벙벙하기까지 했다.
그가 바로 현재 한미은행 부평지점에 근무하는 윤철수 지점장이다.
이때부터 임직원 가족까지 모두 한미은행 고객이 되었다.
계약서만으로도 대출을 받는 신뢰가 쌓여나갔다.
85년 롯데월드로부터 오수,중수도 시설공사를 수주한 후 회사는 제자리를 잡고 성장엔진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매출도 30억,50억,1백억원으로 급신장했다.
여유가 생기자 연구개발실을 만들어 오수처리 공법과 장치개발 연구에 들어갔다.
연구개발(R&D)만이 기술을 파는 회사의 유일한 생존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연구개발에 필요한 선진 기술을 얻을 겸 그동안 고생한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을 겸 전직원을 이끌고 86년 일본에서 열리는 환경전시회에 참가했다.
전시회에서 일본의 앞선 기술을 둘러보자니 앞이 캄캄해졌다.
'이래서는 기술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곧바로 일본과 기술제휴를 추진했으나 기술 이전료가 너무 비쌌다.
'기술을 이전만 받다가는 영원히 그들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생각에 독자개발에 나섰다.
가능한 모든 지식과 정보를 총동원해 RBC(회전원판접촉장치)개발에 착수,1년반 만에 자체제작할 수 있었다.
그랜드백화점(현 롯데 강남점) 오수처리시설에 직경 3m,길이 6m짜리 8대를 설치했다.
그러나 1년이 조금 지나자 문제가 생겼다.
RBC 한 대의 샤프트 중간이 부러진 것이다.
당시 RBC를 20여기 운전하고 있었는데 모두 교체해야 할 판이었다.
워낙 덩치가 크고 무거운 장치여서 들어내기도 여의치 않았고 정확한 고장원인도 밝혀내지 못했다.
더구나 비용을 감당하기에도 힘에 겨웠다.
'기술개발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하는 자괴감과 단순히 기술을 모방만 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알게 됐다.
암담했다.
며칠을 고민하다 정면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아직 쓸만한 RBC도 모두 교체해주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 아닌가.
회사 전직원이 이에 매달려 문제가 생긴 설비를 교체하고 고쳐나갔다.
장치들을 교체하는 동안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신용은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또다시 빈손이 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