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라크전쟁 우려로 가뜩이나 불안한 국제 석유시장이 '베네수엘라 복병'을 만나 더욱 흔들리고 있다. 국제유가는 16일 세계 5대 석유 수출국인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 중단으로 '고(高)유가'의 경계선인 배럴당 30달러에 육박했다. 지난 2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간 베네수엘라 산업계는 현재 모든 석유 수출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이에 따라 국제 석유시장에서 에너지 위기설이 증폭되고 있다. ◆ 국제석유시장에서 사라진 2백40만배럴 베네수엘라의 하루 평균 산유량은 3백10만배럴이며, 이중 2백40만배럴이 수출되고 있다. 산유량은 세계 7위, 수출량은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노르웨이 이란에 이어 5위다. 차베스 대통령의 실정을 이유로 퇴진을 요구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총파업으로 지난 주말부터 석유 수출이 멈춰졌다. 2주 전에 시작된 총파업 이후 석유 수출은 부분적으로 이뤄져 왔다. 그러다 지난 14일부터 파업사태가 격화되면서 유조선의 석유 선적이 전면 중단됐다. 이에 따라 국제 석유시장에서 하루 2백40만배럴의 베네수엘라산 석유가 사라졌다. 이는 세계 석유 수출 물량의 약 8%로, 시장을 교란시키기에 충분한 양이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이 전면 중단된 뒤 첫 거래일인 16일 세계 3대 기준 유종 가운데 하나인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 1월 인도분 가격이 한 달 만의 최고치인 배럴당 28.87달러로 43센트 뛰었다. 지난 주말(13일)에도 43센트 상승한 배럴당 28.44달러로 마감돼 한 주 동안 1.6달러 급등했다. 주간 기준으로 8월 중순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미국의 이라크공격 위협이 고조됐던 지난 9월 말 유가는 31달러선에 육박하며 19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이라크의 무기사찰 수용으로 긴장이 완화되면서 11월 중순에는 24달러 근처까지 떨어졌었다. ◆ 에너지 위기의 전주곡 '에너지 위기가 예상보다 빨리 찾아오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이 전면 중단되자 석유시장 전문가들은 '오일쇼크'를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라크전쟁 우려 등 다른 요인은 차치하고,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 중단 하나만으로도 유가는 배럴당 30달러대로 치솟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유가의 30달러 돌파는 시간문제일 뿐이며, 관심의 초점은 30달러선을 넘는 것이 아니라 '30달러선을 얼마나 많이 넘느냐'에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에너지거래업체 피마트USA의 존 킬더프 수석 부사장은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 중단은 에너지가격 쇼크의 전주곡(a prelude to an energy price shock)"이라며 파업사태가 지속되면 이라크전쟁이 나기도 전에 세계는 에너지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베네수엘라 파업사태는 이른 시일 내에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국민들의 퇴진 요구는 물론 미국 정부의 조기 대통령선거 촉구도 거부하고, 병력을 투입해 국영 석유회사를 장악하는 등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그에 따라 국민들의 반정부시위 및 총파업 사태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라크전쟁 우려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실질 산유량 감축 결정 등으로 이미 상승 압력을 받고 있는 국제유가에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 중단사태는 기름을 부은 격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 파업사태가 장기화되면 국제유가는 이라크전쟁이 터지기도 전에 35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정훈 기자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