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cho@kotef.or.kr 어느날 갑자기 위로부터 온 전화 한통으로 김 지점장의 운명이 바뀌게 됐다. 소속은행이 타 은행에 합병되면서 설마하던 것이 현실로 닥쳐온 것이다. 남의 일로만 여겼던 '명예퇴직'이 그의 차례가 된 것이다. 며칠 버텨봤지만 이미 결정이 난 것인데,꼴만 사나울 것 같아서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다. 20여년간 은행이란 좋은 직장에서 잘 지내고 지점장까지 하였으니 그만하면 훌륭한 것 아니냐고 주위에서 위로한다. 특히 지난번 IMF 외환위기 때 수많은 선배,동료들이 구조조정을 당해 먼저 떠났던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그는 운이 좋았다고 자위도 해본다. 또 지난 20여년간 행장은 수없이 바뀌었지만 은행의 주인이란 의식을 갖고 참 열심히 일해왔다고 생각한다. 예금 유치한다고 사돈의 팔촌까지 괴롭히고 다녀서 상을 탄 적도 있었고,또 최근에는 대출 실적이 많아야 고과점수가 올라간다고 해서 약장수처럼 주위에 돈 쓰라고 권유하고 다녔다. 그렇게 모두들 열심히 했는데도 부실 은행의 간부란 낙인을 찍힌 채 떠나야 한다. 정책금융이니 국책사업이니 하는 과정에서 은행이 제 목소리 한번 변변히 내지 못했던 반면 또 고객들로부터는 담보 잡고 돈 빌려주는 전당포 역할 밖에 못한다는 억울한 소리도 듣고…. 돌이켜 보면 은행이 자생력을 갖지 못하고 이렇게 된 것이 꼭 은행탓만인가. 과거에는 은행에서 퇴직자에게 관리기업이라도 일할 자리를 주선해 주었지만,요즈음은 이것도 무슨 관리공사 등에 넘어가 버렸으니 그 길도 막혔다. 그렇다고 얼마 되지도 않는 퇴직금 가지고 사업이나 장사를 하는 것은 물정 모르는 은행원이 돈 날리기 십상인 것 같다. 이제 50을 갓 넘은 나이에 앞으로도 10년 이상은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김 지점장에게는 화이트칼라 실업자들에 대해서 사회 안전망이 너무나 미약한 것이 원망스럽다. 또 20여년간 금융분야에서 축적된 전문성이 사회적으로 퇴장될 지 모른다는 것도 아쉽기만 하다. 당분간 아무런 생각 않는 것이 좋을 듯해서 김 지점장은 아내와 못했던 여행이나 떠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