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차관에 대해 사실상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한 아르헨티나와 국제통화기금(IMF)간 구제금융 협상이 '산 넘어산'이다. 에두아르도 두알데 대통령 취임 직후인 금년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11개월동안을 질질 끌어온 차관협상은 한때 막바지 단계에 이른 듯 했으나 IMF가 추가조건을잇따라 제시하면서 해를 넘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아르헨 언론들은 "IMF가 미국 공화당 강경파의 입김에 놀아나고 있다"며 "IMF와 미정부는 `아르헨티나의 철저한 파산'을 이끌어낸 뒤 새 구도를 짜보겠다는 의도"라며 전례없이 강력한 비난논조를 보이고 있다. 로베르토 라바냐 아르헨 경제장관은 금주초 미국 워싱턴의 IMF본부를 방문, 앤크루거 부총재 등과 최종담판을 벌였으나 IMF로부터 ▲대통령 개인이 아닌 전체 주정부의 초긴축 약속 및 이행 ▲부실은행 정리 등 강력한 금융권 구조조정 ▲의회의경제개혁 보장 ▲집권당 전당대회 및 대선일정의 명료화 등의 요구사항만 추가됐다. 아르헨 정부는 약 200억달러에 이르는 차관협상 개시이후 지금까지 페소화 평가절하와 재정적자 축소, 공공부문 대규모 정리해고, 은행 파산법 제정 등의 각종 개혁조치를 마련해 협상 테이블에 올렸으나 크루거 부총재를 비롯한 IMF내 강경세력은퇴짜를 놓기가 일쑤였다. 우스개로 "아르헨티나가 국영기업 가운데 한 개라도 미국에 팔았더라면 미국이자국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협상을 이렇게 지루하게 몰고 갔을 것인가"라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또한 "미국 공화당정부가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집권페론당내 좌파세력의 리더인 두알데 대통령이 퇴임하지 않는 한 IMF는 여러가지 명목을 붙여 구제금융 지원을 미룰 것"이라는 추측도 무성하다. IMF가 대선후보를 가릴 페론당의 전당대회와 대선일정을 보다 명확히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이런 배경때문이라는 해석도 아르헨 국민 사이에 설득력을 얻고 있다. 두알데 대통령은 15일 워싱턴 방문을 마친 뒤 귀국한 라바냐 경제장관으로부터협상결과를 보고받은 뒤 주지사들과 회동을 오는 17일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IMF의 처사가 못마땅하지만 일단 IMF의 요구조건을 `최선을 다해 논의한다'는 인상을심어주기 위해 주지사 회의를 앞당긴 것이다. 주정부의 입장은 물론 변할 게 없다. 극심한 재정난으로 임금마저 주정부 채권으로 지급하고 있는데다 실업률마저 치솟고 있는 판국에 어떤 주지사라도 IMF가 요구한대로 대량 정리해고 등 추가 긴축정책을 단행, 볏짚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모험을 하지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르헨 언론들은 따라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세워 두알데 정부를 압박하는 IMF의 저의를 의심하며 "아르헨 정부를 길들이려는 미국 공화당 강경세력의 입김에 IMF가 놀아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협상담당자인 크루거 부총재를 `원흉'으로까지 묘사했다. 유력일간 클라린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장애물인 크루거는 조지 W. 부시 행정부내 초강경 세력중 한 명"이라며 "이들 극우세력은 두알데 정부와의 합의를 원치않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아르헨티나를 `걸신들린 돼지새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신문은 또 "아르헨티나 스스로 파산을 선언하면 크루거가 구상한 새로운 이론을아르헨 경제에 적용한다는 게 미국내 강경파의 희망"이라며 "크루거가 전례없이 완강하게 나오는 것은 공화당 강경세력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이라고 몰아붙였다. 라 나시온도 아르헨-IMF간 대치를 '냉전시대'에 비유, "양자간 극단적인 대결이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아르헨과 IMF는 양쪽 모두에게 치명적이될 폭풍의 한 복판으로 점점 빠져들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라 프렌사는 아르헨과 IMF간 협상의 교착상태를 빗댄 '(아르헨 경제) 붕괴에 합의'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IMF의 강경일변도 협상태도를 성토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성기준특파원 bigpen@yonha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