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원인은 관치경제에 있는데도 재벌에만 죄가 있는 양 정기적으로 '소동'을 벌이는 것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공무원이 밤늦게 일한다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그들은 위에 보고하기 위해 일할 뿐이다." "정부가 아무도 지킬 수 없는 법으로 수많은 잠재적 범법자를 만들어 놓은 다음 미운 놈만 골라 손을 본다고 사람들은 느끼고 있다." 공정위에서 고위직을 지낸 전(前) 고법판사 임영철 변호사의 공개적인 비판이다. 그는 지난 96년 공정위 법무심의관으로 특채된 후 지난 4월까지 6년간 공정위에서 일했고 직원들이 뽑은 바람직한 공정인상(像) 1위에 선정되기도 한 사람이다. 그가 오늘 출간하는 '넥스트 코리아:대통령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라는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우리 정부 및 공직사회의 치부와 오류 그 자체다. 정부 개혁을 갈망하는 모든 자들이 공감하는 바를 농축한 것이기도 하다. "제왕적 장관에 심지어 조폭적이기까지 한" 공무원 사회를 질타하는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정부조직이 왜 이토록 끊임없이 비대해지고 있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왜 갈수록 경제활력이 사라지고 기업들은 기업할 의욕을 잃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된다. 시장을 억누르고,기업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동안 정부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김대중 정부가 스스로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내세우면서도 결국 '거대 정부'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던 것은 바로 그런 원인들 때문이다. 외환위기 직후 일부 축소되었던 정부 조직은 4년여를 지나는 동안 오히려 더욱 불어나 98년 84명이던 장차관급 고위 공직자수만도 이미 1백명을 넘어섰을 정도다. 정부만으로도 부족해 이틀이 멀다하고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창설되기도 했다. 정부 위의 정부라고 할 대통령 위원회는 97년 9개에서 16개까지 불어나 있다. 이러고도 정부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는 없다. 공무원수가 줄어들지 않다보니 없는 일이라도 만들어내야 하고 결국 행정규제는 갈수록 많아지게 된다. 임 변호사가 근무했던 공정위는 더욱 그런 경우다. 한때 폐지됐던 출자총액제한 제도 등 각종 행정규제를 온갖 명분을 달아 되살려내고야 마는 공정위다. 경제가 활기를 잃고 시장이 죽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다. "공무원수를 절반으로 줄이면 불필요한 규제도 원천적으로 줄어드는 효과를 볼 것"이라는 임 변호사의 주장은 다음 정부를 책임지겠다는 대선주자들이 특히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