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 며칠 전 하비 피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연일 언론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기업회계부정을 막기 위해 새로 만든 회계감독위원회의 초대 위원장 선임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윌리엄 웹스터 전 CIA 및 FBI 국장이 '낙하산'식으로 선임됐으나 언론이 문제삼은 것은 선임방식이 아니다. 그가 회계분야의 문외한이란 점이다. 웹스터가 회계비리로 문제가 돼 지난 9월 상장폐지된 US테크놀로지란 회사에서 회계감사를 지냈다는 것이 알려지자 공격의 강도는 한층 높아졌다. 엔론사태 이후 기업개혁이 도마위에 올랐지만,칼자루를 쥔 피트가 하는 일은 늘 이런 식이었다. 문제가 터지면 문제를 규명하는 것보다 확산을 막기에 바빴다. 회계법인을 조사할 때 회계법인 CEO들을 따로 만나는 등 유착이 정도를 넘었다. 언론들은 육중한 그의 몸집에 빗대,"마치 머리가 빈 스모(일본씨름) 선수 같다"는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았다. 피트에게 마지막 펀치를 가한 사람은 폴 크루그만 프린스턴대학 교수다. 그는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피트의 법칙(The Pitt Principle)'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싸잡아 비판했다. 웹스터를 고른 것은 바로 그가 개혁을 할 수 없는 가장 적임자라는 뜻이라는 게 이 법칙의 골자다. 피트는 회계업계의 로비에 따라 개혁을 할 생각이 없었고,그래서 경력은 화려하지만 해당업무는 잘 모르는 웹스터 같은 사람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크루그만 교수는 "부시 대통령이 회계업계와의 유착이 강한 그를 SEC 위원장으로 선택한 것이나,금융경험이 없는 폴 오닐을 재무장관으로 앉힌 것도 크게 보면 피트의 법칙에 따른 것이고,그 결과 지금 미국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피트 위원장은 중간선거 당일 사의를 표했다. 후임자를 고를 때까지 있어 달라는 부시 대통령의 요구로 지금 '레임덕'인 상태다. 하지만 그가 이미 시장의 신뢰를 잃은 인물인 만큼 후임자를 빨리 결정하라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어 자리지키기조차 민망한 입장이다. 이 '피트의 법칙'은 우리 주변에도 있을 듯 싶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