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을 통한 산업은행 자금 4천억원 북한지원 의혹의 진실을 정부가 나서 규명하라는 여론의 압력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은행 영업점 3곳에서 나간 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자금 이동경로'을 밝히는 것이 선결과제이자 충분조건이다. 발행수표를 따라 계좌를 추적하면 된다. 그러나 정부당국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다. 계좌추적권(금융거래정보 요구권)에 대한 근거를 명시한 금융실명제법의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나 유관 기관인 금융감독원은 말할 것도 없고 공정거래법을 관장하는 공정거래위원회도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더구나 문제를 밝힐 계좌추적권 발동을 놓고 법을 관장하는 재경부는 이틀만에 '계좌추적 가능'에서 '불가'로 입장을 바꿔 그 배경이 주목된다. 재경부는 당초 실무부서에서 "금융실명제법에 따라 계좌추적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지난달 30일 오후 이를 금융감독원에 문서로 통보했다. 그러나 지난 2일 국감장에서는 "할 수 없다"는 정반대의 답변이 나왔다. 계좌추적권 발동 대상이 된다는 최초 재경부의 법률 해석에 대해 금감원이 강력하게 '이의 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정부 계좌추적 반대 =재경부와 금감원은 계좌추적권 발동에 왜 반대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 몇가지 추론이 나올 수 있다. 문제의 자금이 어떤 과정을 거쳤든 실제로 북한에 지원됐을 가능성이 있는데다 현대상선이 계열사 지원이나 기타 기업활동과 관련된 자금으로 비정상적으로 전용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드러나든 구조조정을 총괄지휘해온 금융감독 당국으로서는 입장이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금감원 입장에서는 2000년 6월 현대상선으로 자금이 지원된 때가 이근영 금감위원장이 산은총재로 있던 시점이어서 부담이 될 만한 상황이다. 감리나 감사원 조사로는 한계 있을 듯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계좌추적권을 발동하라는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계좌추적권 발동을 제쳐둔채 현대상선에 대한 금감원의 감리(기업 회계장부가 정확했는지 검토하는 작업)만 진행중이다. 그러나 감리의 경우 일반적으로 계좌추적권이 동원될 수 없어 4천억원의 행방은 규명하기 어렵다는게 회계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금감원은 "4일까지 자금지원 내역을 제출하라"고 산은에 요구해 놓은 상태지만 의혹이 얼마나 풀릴지에는 의문이다. 급기야 감사원이 나섰다. 그러나 14일부터로 예정된 감사원 감사도 민간기업인 현대상선에 대해서는 계좌추적을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다. 감사원 감사도 기껏해야 산은에서 언제, 얼마만큼의 자금이 대출됐는가와 산은을 통해 거래처인 현대상선의 자금용도를 설명받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계좌추적 발동 여론 높아 ='현대상선의 대북 4억달러 지원의혹'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계좌를 추적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금융실명제법 제4조 (1)항 4조 라에 따라 '부외거래'(장부에 명시하지 않은 비정상적 거래) 등 법령 위반에 대해서는 계좌추척권을 발동할 수 있는 만큼 회계분식 의혹이 있는 현대상선에 대한 계좌추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제23조 (1)항과 제50조 (5)항에 명시된 '부당 내부거래 혐의가 있는 회사의 조사'에 따라서도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한나라당 등 정치권에서도 계속 이를 주장해 왔으며 4일 국감장에서도 같은 내용의 설전이 예상된다. 4일에는 재경위가 산업은행, 정무위는 금감위와 금감원 국정감사를 속개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현대계열사 내부문제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도 보내고 있다. 의혹만 무성한 대북지원설과 새롭게 부각되는 현대상선의 계열사 편법지원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계좌추적권 발동이 절실하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