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부터 물가불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원화환율 상승으로 수입 물가가 오르고 있는 데다 국제유가도 상승세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 자금이 가계대출과 부동산쪽으로 몰리고 있는 것도 물가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 연차총회에 참석차 워싱턴에 가 있는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현지 간담회에서 이런 점들을 들어 "조만간 인플레 압력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가불안 요인들을 지금부터 해소하지 않으면 경제에 큰 우환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물가를 잡기 위해 섣불리 금리를 올릴 경우 경기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는게 정책당국의 고민이다. ◆ 많이 풀려나간 돈 하루짜리 콜금리를 연 4%대에 묶어 놓는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나갔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지난 7월의 총유동성(M3) 잠정치는 1천95조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9% 증가한 것. 한은이 제시한 총유동성 증가율 관리목표치인 8∼12%를 이미 벗어난 상태다. 한국은행은 이에 따라 이달부터 11조6천억원인 총액대출한도를 9조6천억원으로 줄이는 등 통화량 단속에 나섰다. 총액대출은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적극적으로 대출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한은이 대출금의 절반을 2.5%의 낮은 금리로 빌려 주는 정책자금이다. 총액대출 한도가 줄어들면 은행들은 시장에서 콜금리(현재 4.25%) 이상의 비용을 들여 자금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총유동성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란 게 한은의 기대다. ◆ 가계대출과 부동산에만 몰리는 시중자금 금리가 낮은 수준인데도 기업 자금수요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 지난 2.4분기중 설비투자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0.2% 감소했다. 기업들이 국내외 경기회복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비투자 측면에서만 본다면 오히려 금리를 더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쪽으로 물꼬를 트지 못한 돈은 부동산과 가계대출 쪽으로만 유입되고 있다. 올해 집값 상승률은 최근 12년래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개인대출은 지난 2.4분기중 25조5천억원 늘어나 저축 증가액 24조1천억원을 앞질렀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난 80년대 말과 90년대의 경험에 비춰보면 부동산 가격 상승과 민간소비 증가는 단기적으로 경기에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왔다"고 말했다. ◆ 공급요인도 불안 물가를 불안하게 만드는 또 다른 위협 요인은 임금 유가 수입품가격 등 생산원가의 상승이다. 5인 이상 사업체 기준 명목임금은 올들어 5월까지 9.6%나 올랐다. 올해초 20달러대 초반에서 움직이던 유가(두바이유 기준)도 최근 27달러까지 올랐다.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압박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원가상승 요인들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세계 경기 회복이 불투명해지면서 물가상승 압력은 많이 해소된 상황"이라며 "그러나 이상기후로 인한 원자재가격 변화와 유가 상승 등 공급측면에서의 물가상승 요인은 아직도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