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고추匠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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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충북 음성에서 고추농사를 지어온 이종민씨(50)의 성공담이 내년부터 고등학교 교과서인 '진로와 직업'에 실린다고 한다.
컴퓨터 등 첨단분야의 기술자들이 소개되는 예는 있었으나 농민이 등장하기는 이번 교과서가 처음이다.
'고추박사'로 통하는 이씨의 학력은 중학교 한 학기 수료가 전부다.
9남매 중 막내인 그는 형들의 학자금 걱정을 하는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리려 중퇴를 결심하고 농사일에 나섰기 때문이다.
논밭일을 거들며 몇해를 보냈지만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이씨는 음성이 이름난 고추산지라는 점에 착안,특이한 농법을 개발하면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관건은 품질과 청결이었다.
이씨는 우선 도시민들의 미각을 알아보기 위해 설문지를 들고 조사에 나섰다.
결과는 의외였다.
우리 국민의 70% 정도가 매운 맛보다는 '달면서 덜 매운' 고추를 선호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물을 주는 시간과 양,횟수를 조절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이 맛을 내는 고추재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생고추를 따먹으며 맛을 조절하는 습관은 이 때 배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고추가 맛만으로 승부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빛깔이 검붉어야 하고 가루가 많이 나오도록 껍질이 두꺼워야 최상품으로 인정을 받았다.
문제는 고운 빛을 내기 위한 건조법이었는데 이씨는 비닐하우스내에 자갈을 깔아 낮에는 태양열로,밤에는 태양열로 데워진 자갈의 열로 고추를 말리는 방법을 찾아냈다.
명품고추가 알려지면서 한해 4만∼5만명이 이 곳을 찾자,이씨는 아예 고추전시장을 만들어 기술을 전수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문량에 비해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한 게 큰 아쉬움이다.
매년 6월 주문을 받아 가구당 20근으로 제한 판매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씨는 고추에 관한한 장인(匠人)인 셈이다.
마이스터(Meister)라면 존경을 받는 독일에는 소시지 장인이 있고 역시 장인정신이 투철한 일본에는 초밥장인이 있다.
이씨와 같은 장인이야 말로 농산물개방에도 맞설 수 있는 첨병일지 모른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