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직장 생활에서 벗어나 해외 근무를 해보면 어떨까.' 직장인들 가운데는 막연히 해외 근무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 생활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커리어 관리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앞선다. 그러나 막상 고국을 떠나 해외에서 수십년씩 근무한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자녀들 교육도 문제고 익숙해진 사무실 공간과 정든 직장 동료들을 떠나 일하는게 간단치 않다. 특히 근무환경이 열악한 오지에 파견된다면 더욱 힘들어진다. 이런 이유로 국내 대부분 기업들은 해외 주재원에 대해 순환 근무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3~5년 정도 일정기간 동안 해외에 주재시킨 뒤 본사로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다. 근무 지역도 미국이나 유럽 등 소위 '물 좋은' 지역에 편중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능하면 한번 근무한 지역에는 다시 파견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이 깨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해외 영업에서 효율적인 성과를 올리기 위해선 그 지역을 꿰뚫고 있는 '지역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기업 내에 확산되면서 한 지역에 오래 머무는 이른바 '말뚝 주재원'들이 차츰 늘고 있다. 특히 업무에 있어 인맥이 중요한 중국이나 사이클이 긴 대형 건설 프로젝트 수주가 주 업무인 중동에 이같은 '붙박이 주재원'이 많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삼성전자는 최근 해외 주재원을 장기 근무자와 본사 순환 근무자로 이원화시켜 지역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해외 주재원을 파견할 때도 언어능력과 직무별 능력을 감안해 장기 근무가 가능한 사람을 우선 선발한다. 해외 주재원들에 대해 5년 순환근무를 원칙으로 삼고 있는 LG전자는 올해초 중국 지역 근무자에 대해 5년 한도를 폐지했다. 본인만 원한다면 평생 중국에서 근무할 수도 있게 됐다. LG전자는 중국 사업을 대폭 강화하기 위해서는 중국 시장을 속속들이 아는 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이같은 조치를 내렸다. 실제로 LG전자에는 임원급부터 중국시장 진출 초기 멤버들이 지금까지 그대로 포진해 있다. 노용악 LG전자 부회장(중국지주회사 대표)은 95년 중국으로 부임한 이래 8년째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으며 손진방 부사장도 97년 이래 톈진법인장을 맡으면서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3백27명 주재원 가운데 17명이 5년 이상 장기 근무중이다. 미국 앨라배마주의 몽고메리지사의 현형주 부장은 94년 미국지사 근무를 시작한 뒤 미국에서 8년동안 자재분야를 맡고 있다. 인도 첸나이지사 박승호 차장은 96년 인도공장 설립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인도와 인연을 맺은 뒤 지금까지 인도에 머물고 있고 프랑스 파리지사의 임병권 차장은 96년부터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지역에 주재하고 있다. 한진해운은 본부장급을 중심으로 장기 해외 근무자가 많다. 원찬희 구주지역 본부장(상무)은 78년 런던지점 주재를 시작으로 파리와 함부르크 본부장 등 13년 동안 구주지역 주재원 생활을 했다. 허금 중국지역 본부장은 97년 홍콩지점장을 거쳐 지난해 상하이로 발령받아 6년째 중국지역을 관할하고 있으며 이종선 미주지역 본부장은 90년부터 미주 지역에서 일하고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은 건설업과 플랜트 수주 사업 등 사이클이 긴 프로젝트가 빈번한 지역이어서 몇 십년째 둥지를 틀고 있는 이들이 많다. LG상사 두바이지사의 유명재 상무는 20년 동안 중동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다. 유 상무는 풍부한 인맥을 바탕으로 97년 7억달러 상당의 카타르 정유 프로젝트를 따내는 등 굵직굵직한 계약을 잇따라 성사시켰다. 오만에서 근무하고 있는 대우건설 하웅호 이사도 나이지리아 이란 파키스탄 등 중동 국가에서만 17년 가까이 생활했으며 같은 회사 나이지리아 사무소의 이상영 상무도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거치며 중동에서 12년 일했다. 대림산업 테헤란 지점의 나종원 부장도 76년 사우디아라비아 근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5년 이상 아랍지역에서 근무한 중동지역 전문가다.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