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회 파리모터쇼에는 아무런 주제가 없다. 지난 2000년 80회 대회 때만 해도 '세계-혁신의 신호'라는 거창한 주제를 내걸었던 파리모터쇼가 올해는 '자동차와 인간의 만남이라는 모터쇼의 기본적인 목적 외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며 주제를 아예 내걸지 않았다. 대회를 주관한 피에르 푸조 조직위원장은 "우리는 그저 기본으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제81회 파리모터쇼가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베르사유에서 개막됐다. 오는 10월13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모터쇼에는 개최국인 프랑스를 비롯 모두 23개국 5백43개 업체가 참여해 50여종의 신차를 세계 처음으로 공개하는 등 치열한 전시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현대 기아 대우 등 완성차 3사와 부품업체 8사 등 모두 11개 업체가 참여해 유럽시장 공략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번 모터쇼에서 느낄 수 있는 두드러진 변화는 자동차 시장이 철저히 양분화되고 있다는 것. 대중차는 보다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서고 있고 고급차는 더 화려하고 멋진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를 대표하는 차종이 이번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 BMW의 Z4와 르노의 메간느 신형이다. BMW의 Z4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Z3의 후속차. 이번 모터쇼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 차는 고급 2인승 소형 로드스터. 강한 엣지와 곡선이 어우러진 독특한 디자인과 긴 후드, 긴 휠베이스, 낮은 좌석이 특징이다. 다이내믹 스태빌리티 컨트롤(DSC)과 다이내믹 드라이브 컨트롤(DDC)을 장착해 보다 격동적인 운전이 가능하도록 했고 위성 수신 내비게이션 등 첨단 장비도 갖췄다. 다른 업체들이라고 뒤지지 않는다. 아우디는 최고급 세단인 A8 새 모델을, 폭스바겐은 6.0ℓ급 신차 페이튼을 내놓았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5.5ℓ 12기통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을 얹은 마이바흐를 양산차로 출품했다. 하루에 4대만 생산되는 이 차는 최고급 기종인 62 모델의 가격이 35만유로(약 4억원)나 된다. 재규어는 1968년 데뷔후 80만대나 팔려 나간 고급차 XJ의 7세대 신차를 선보였다. 그야말로 럭져리 카의 전성기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와 중동의 전운에도 이처럼 럭져리 모델이 대거 선보이고 있는 것은 자동차 업체들이 한 명의 소비자라도 더 끌어들여야 하는 아쉬운 위치에 서 있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자동차업계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르노의 메간느는 이번에 20억유로를 들여 풀모델 체인지를 단행했다. 르노가 사운을 걸고 있는 차종. 닛산의 알메라와 플랫폼을 공유하고 왜건 쿠페 컨버터블 미니밴 SUV 픽업 등 파생차를 잇달아 선보여 원가를 대폭 낮추겠다는게 르노의 전략이다. 원가를 낮추는 대신 1.4~2.0ℓ급 차종인데도 내비게이션 시스템 등 다양한 편의사양과 안전장치을 장착해 소비자들을 끌어들인다는 계산이다. 질을 높이는 대신 양을 늘려 자동차 가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 대중들을 파고 든다는 전략인 셈이다. 르노가 목표하고 있는 판매량은 5백50만대다. 피아트도 스틸로라는 스테이션 왜건을 내놓았고 포드자동차도 신형 3도어 피에스타를 선보였다. GM은 포드 퓨전의 경쟁차로 메리바라는 미니 MPV를 내놓고 새로운 세그먼트에 진입했다. 사치스럽게만 느껴지던 로드스터와 컨버터블 차량을 소형차 기본을 개발해 저렴한 가격에 보급하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포드 스트리트카, 폭스바겐 뉴비틀 컨버터블, 닛산 마이크라 C+C 등이 그런 경우다. JD파워사의 찰스 영은 "최소한의 플랫폼으로 틈새시장을 겨냥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며 "작은 차체에도 소비자들의 욕구를 반영 최대한의 실내공간을 확보하고 있다는게 놀랍다"고 말했다. 파리=강혜구 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