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초였다. 거실 에어컨(만도공조 위니아)이 작동되지 않았다. 애프터서비스팀에 연락하자 주소와 전화번호를 확인한 뒤 김치냉장고만 등록돼 있다고 말했다. 오래 전 본사에서 직접 샀다고 하자 "다음날 손봐 주겠다"고 대답했다. 이튿날이라도 오면 다행이다 싶었는데 뜻밖에 그날 오후에 전화로 "오늘 가능하겠다"고 하더니 금방 와서 고쳐줬다. 이런 '감동적인' 일도 있지만 많은 경우 내구재를 사거나 에프터서비스를 신청하려면 겁부터 난다. 배달과 수리 모두 약속시간이 지켜지는 적이 드문 탓이다. 분명 오전에 보내준다거나 오겠다고 해놓곤 오후가 돼도 아무 소식이 없어 전화를 하면 그때서야 "늦는다" "오늘 어렵겠다"고 말한다. 결국 싫은 소리를 하게 되고 그러고 나면 두고두고 언짢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잠시 지방에 다녀오니 컴퓨터의 인터넷(드림라인 ADSL프로)이 안된다고 해 "고장신고를 하지 그랬느냐"고 했더니 전화를 안받는다는 것이었다. 다이얼을 돌리니 통화중이거나 신호음만 울리는 상태가 계속됐다.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한 끝에 겨우 통화가 됐다. 수화기 저편에선 중학생 아들에게 컴퓨터를 켜 이리저리 해보라고 한 뒤 안된다고 하자 컴퓨터가 아니라 네트워크의 문제라며 다음날 오전까지 고쳐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튿날 오후가 돼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기다리다 못해 다시 전화하자 일손이 달린다며 하루 더 미뤘다. 둘째날도 정오가 넘도록 가타부타 말 한마디 없었다. 열 번 이상 전화통과 씨름을 하고 끝내 언성을 높인 뒤에야 오후 네댓시쯤 해결됐다. 무려 5일,신고한 뒤로도 이틀동안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했는데도 요금청구서엔 겨우 1백5원 할인돼 있었다.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망 보급과 가입률은 세계 최고라고 하는 마당이다. 실제 초고속 인터넷망 가입자는 6월말 현재 9백21만명(전국 가구의 64%)에 달하고 연말이면 1천만명을 돌파한다고 한다. 지금도 화려한 광고에 설치비 및 3~4개월 사용료 무료를 앞세워 신규 가입자를 모집한다. 매월 3~5의 사용료를 내는 기존고객에 대한 서비스는 나몰라라 하면서 새 가입자 확보에만 열을 올리는 걸 볼 때마다 울화통이 터진다. 가입자가 가장 많은 메가패스의 경우 인터넷 도중 수시로 툭툭 끊어지는데도 장애에 대한 손해배상 기준이 4시간이라는 이유로 별다른 보상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백번 양보해서 생각하면 초고속인터넷망 서비스는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서툴고 인력이 모자랄 수도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최소한 고장신고 전화는 제때 받아야 하고,정확한 수리 시간 또한 분명하게 알려줘야 마땅하다. 부득이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면 가능한 시간을 미리 통보해줘야 함도 물론이다. 정보통신부가 초고속인터넷 품질보장제도(SLA)를 마련,시범서비스 후에 구체적인 시안을 마련한다니 기다려봐야 하겠지만 지금같은 서비스 상태가 계속된다면 쌓이고 쌓인 소비자 불만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지 알 수 없다. 엄청난 모델료를 들여 요란한 광고를 하는 데만 급급할 게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소비자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