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22일 발표한 투기혐의자들의 '재건축 아파트 사재기' 실태는 충격을 넘어 가히 '엽기적'이다. 이들은 서울 강남 등지의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탈세'와 '위법'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변호사.의사 부부가 1년에 8백만원만을 번다고 세무서에 신고해 놓고서는 아파트와 상가 16채를 사들였는가 하면 한푼의 소득도 신고하지 않은 50대 주부가 자녀들과 함께 무려 26채의 아파트를 사재기한 사례도 적발됐다. 사전 조사 결과 의사 변호사 공인중개사 등 '과세 사각지대'로 분류돼온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중 상당수가 탈세와 투기에 앞장선 것으로 드러났다는 점도 충격적이다. 이들 직종에 대한 세원 관리에 적잖은 허점이 방치돼 왔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신고소득 무(無), 아파트는 26채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송모씨(여.55)는 2000년부터 강남구의 재건축 예정 아파트 17채를 사들였다. 투자금액은 시가로 36억원 가량. 3채는 자녀명의로 샀다. 이전에 송씨가 갖고 있던 수도권의 아파트 9채를 합치면 송씨 일가가 가진 아파트는 모두 26채다. 그러나 송씨는 2000년부터 올해까지 소득을 한푼도 신고하지 않았으며, 남편도 일정한 직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 탈세 일삼은 변호사.의사 부부 강남구 대치동의 80평대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는 변호사 장모씨(50)와 의사 김모씨(여.45) 부부는 지난 99년부터 최근까지 재건축이 예상되는 아파트 10채를 구입했다. 김씨 명의로 송파 시영아파트 5채, 장씨 명의로 수도권 주공아파트 5채를 사들였다. 이들은 총 16채의 상가와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갑부임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들이 최근 4년간 국세청에 신고한 소득은 모두 합쳐봐야 3천3백만원에 불과했다. 의사.변호사 부부가 1년에 겨우 8백25만원씩만을 벌었다는 얘기다. ◆ 공인중개사도 투기에 한몫 강남구 역삼동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남모씨(55)는 2000년 이후 본인과 부인 명의로 재건축이 예상되는 강남구 도곡동 아파트 8채를 사들여 이중 4채를 다시 팔았다. 국세청 관계자는 "남씨는 중개의뢰자의 중개대상물을 직접 거래할 수 없도록 한 부동산 중개업법을 위반했다"며 "또 중개업소의 신고소득 금액이 연평균 6백만원에 불과한 점으로 볼 때 상당한 탈세 혐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 50대 무직자, 분양권 사재기 강남구 청담동의 고급 주택에 살고 있는 안모씨(51)는 아파트 및 분양권 전매를 일삼다가 이번에 적발됐다. 안씨는 최근 자신과 부인,자녀 명의로 용인지역 아파트 분양권 8개를 취득해 모두 전매해 버렸다. 안씨가 신고한 양도소득은 3천4백만원이지만 국세청이 파악한 이들 아파트의 프리미엄 총액은 모두 2억6천만원이었다. 안씨는 또 시가 7억원 상당의 강동구 아파트도 4채나 구입했다. 안씨는 일정한 직업이 없으면서도 95년 이후 33차례나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등 호화생활을 해 왔다고 국세청은 밝혔다. ◆ 자영업자까지 가세 의사 오모씨(60.강남구 역삼동)는 98년 이후 본인과 가족명의로 강남지역 빌딩 점포 2채와 아파트 5가구를 취득했다. 이 과정에서 부인과 자녀들에게 아파트 구입자금 25억원을 주고 증여세는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씨가 신고한 사업소득은 3천만원에 불과했다. 강남구 역삼동에 사는 자영업자 강모씨(50)는 2000년 이후 부인 황모씨(45)와 미성년 자녀 3명의 명의로 9억원 상당의 강남지역 재건축아파트 7채를 구입했다. 강씨가 신고한 사업소득은 연 1천9백만원이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