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예금보험공사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인원 사장은 요즘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좋아하는 책 한 줄 읽을 시간이 없을 정도다. 경제적 현안을 뛰어넘어 정치적 이슈가 되어버린 '공적자금 문제'의 한 가운데 서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앞에는 간단치 않은 금융관련 현안들이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은행 대한생명 등 부실 금융회사 감독 및 매각, 상호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 등에 대한 관리.감독, 금융계에 엄청난 파장을 예고하고 있는 예금보험료 차등화 등 온갖 '숙제'가 산적해 있다. 최근에는 또 하나의 뜨거운 이슈가 찾아 왔다. 금융회사 및 부실기업, 회계법인의 부실 책임자들에 대한 수조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다. 대상 인원만도 5천명에 육박한다. 이렇다보니 이 사장은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리고 온갖 회의에 참석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소송대상자들의 선처를 부탁하는 각종 전화에 응대하고 예보의 행보를 파악하기 위한 각종 관계기관들의 문의에 답하는 것도 이 사장이 할 일이다. "손해배상 소송을 할 바에는 차라리 감옥에 보내달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소송을 당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친구도 있고 지인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을 과거와의 단절을 위한 것으로 이해해 주길 부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장이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소송문제에 대해 사장으로서 재량권이 없다는 점이다. 회계법인과 관련된 소송이 대표적이다. "외국에는 소송까지 가지 않고 조정을 해 적정한 선의 벌금을 내는 제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법적인 장치가 없습니다. 지금 만들 수도 없는 일이지요." 이 사장은 그러면서도 "수십억, 수백억원대의 민사 소송을 당하는 것은 평생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잘 압니다"라며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다시는 금융부실로 인해 책임을 추궁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인간 이인원'으로서의 안타까움을 털어놓는다. 부실 금융회사들에 대한 엄정한 감독과 사후관리를 위해서는 예보의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이 사장은 "생각이 다르다"고 말한다. "지금 있는 제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부족한 부분은 점차 보완하면 될 것입니다. 지나친 권한 강화는 또다른 부작용을 빚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장은 조만간 공적자금 관련 국정조사라는 또 하나의 도전을 맞게 된다. "당당히 대처할 생각입니다. 공적자금의 투입과 회수 과정에 대해 한 점의 의혹도 없도록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밝힐 것입니다." 공적자금 문제를 정치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예보 주변에서는 이 사장이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성격인 만큼 이런 일에 제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사장은 지쳐 있다. 그는 다음주중 이런저런 일들을 제쳐놓고 설악산으로 휴가를 다녀올 예정이다. 수많은 현안들을 차분하게 정리해 볼 계획이란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 44년 서울생 경복고, 서울대 상대(64학번) 72년 행정고시 합격(12회) 85년 재무부 손해보험과장 87년 재무부 중소금융과장 94년 재경원 기획예산담당관 97년 국세청 재산세국장 99년 예금보험공사 감사 2000년 한국선물거래소 이사장 2002년 예보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