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가 최승희(1911∼?)에게는 항상 찬탄을 자아내는 수식어들이 따라 다닌다. '동양의 진주''반도의 무희''한국의 이사도라 던컨' 등 수도 없이 많다. 이는 곧 최승희에 대한 평가이기도 한데 대부분 서구인들이 붙여준 것이다. 국내에서는 오랜 세월 그녀에 대한 연구가 금기시 되다시피 했다. 최승희가 프롤레타리아문학에 심취해 있던 남편 안막을 따라 북으로 넘어간 소위 '월북인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에서도 67년 '반혁명분자'로 숙청당한 이후 그녀는 행방조차 확인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처형됐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바라춤의 영감을 준 금강산의 한 산사에서 보살노릇을 하다 숨졌다는 미확인 얘기들만이 흘러나오고 있을 뿐이다. 최승희에 대한 재조명작업이 시작된 건 90년대 들어 남북간의 해빙무드가 조성되면서부터였다. 정병호 중앙대 명예교수(75)가 이 작업의 선본장격인데 그는 '최승희 백과사전'으로 통할 정도로 그녀에게 매료돼 있다. 95년 펴낸 '춤추는 최승희'는 그녀의 삶과 예술을 이해하는 유일한 책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을 토대로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졌고 최승희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최승희의 환생'이라 불리는 재일교포 무용가 백향주를 찾아낸 것도 그의 집념이 거둔 결실이었다. 정 교수는 이번에도 큰 일을 했다. 자신이 애지중지 아껴온 최승희 관련 사진 1백40여점을 광주시미술관에 기증한 것이다. 주로 해외에서 수집한 이 사진들 중에는 손기정씨와 함께 찍은 사진 등 진귀한 사진들이 많다. 일제치하인 1930년대 미국 유럽 남미 등 세계무대에서 한국춤의 정수를 보여주며 피카소 등과 교분을 쌓았던 최승희가 우리 곁으로 되돌아 오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광주에서는 사진전시가 열리고 일본에서는 아시히TV가 이달 말 '최승희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송한다고 한다. 10월에는 탄생 9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최승희 국제무용축제'도 열린다. 그동안 애써 외면해야만 했던 최승희의 부활은 여러 모로 관심을 끈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