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6:35
수정2006.04.02 16:38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플레이오프를 거쳐 간신히 본선에 올라온 '전차군단' 독일이 승승장구하며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회전까지만해도 독일 내부에서 '역대 월드컵대표중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았고 축구영웅인 베켄바워 조차 '8강도 어렵다'고 말할 정도로 녹이 슬었던 전차군단으로서는 대단한 실적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 독일보다 전력이 강한 팀으로 알려졌던내로라하는 강자들이 줄줄이 '이변'의 재물이 됐지만 독일은 살아 남았다.
독일은 화끈한 공격력이나 개인기를 보여주지 못했으나 비틀거리면서도 무너지지않았고 찬스를 확실하게 골로 연결시킨뒤 끝까지 지켜내는 '짠물축구'를 했다.
결승 결과를 알 수는 없지만 이번 대회에서 '지키기축구'를 하면서도 무너지지않은 팀은 독일밖에 없다.
단단한 기본기와 강인한 체력, 흔들리지않는 침착함, 3차례 월드챔피언으로 서의 경험, 감독의 용병술 등이 시너지효과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짠물축구
조별리그에서 준결승 한국전까지 보여준 독일의 공격력은 단순 명료했다. 측면돌파에 이은 큰 키를 이용한 고공플레이 외에 이렇다할 공격 테크닉을 구사하지 못했다.
독일이 이번 대회에서 얻은 14골중 8골이 헤딩에 의한 것이었고 이중 미로슬라프 클로세가 얻은 5골은 모두 머리에 의한 것이었다.
겉으로보면 14골이 많아 보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뽑은8골을 제외하면 이후 5경기에서 6골을 뽑는데 그쳤다. 클로세와 게임메이커 미하엘발라크가 묶이면서 공격의 활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독일의 무서움은 공격보다 오히려 '방어'에 있었다. 6경기에서 겨우 1골만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수비수들도 제 몫을 다했지만 수문장 올리버 칸의 선방은 눈부셨다.
조별리그 아일랜드전과 파라과이와의 16강전, 미국과의 8강전, 한국과의 4강전에서 칸은 정확한 상황판단과 위기관리 능력으로 수비전력의 50% 이상의 역할을 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따라서 독일에 선제골을 허용한다는 것은 바로 패배를 의미했다. 6경기에서 선제골을 허용한뒤 만회골을 얻은 팀은 조별리그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한 아일랜드밖에 없다.
▲심리전 압도
서두르지않는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심리전에서도 상대팀들을 압도했다는 평가를받고 있다.
포백 수비로 골문을 단단히 지키면서 기회를 엿보다 상대가 공격에 한 눈 팔다수비에 허점이 보이는 순간, 먹이를 낚아채는 매처럼 기회를 파고 들어 골로 연결시킨뒤 문을 걸어 잠갔다.
16강전에서 파라과이, 8강전에서 미국, 준결승에서 한국이 모두 독일의 이같은페이스에 말려 무릎을 꿇었다.
미국전에서는 비교적 이른 전반 39분에 선제골을 넣었지만 파라과이전에서는 후반 43분, 한국전에서는 후반 30분에 결승골을 얻었다. 서두르지않고 끈질기게 기다렸다는 얘기다.
독일의 영악함과 고도의 심리전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경기는 조별리그 최종경기인 카메룬전이었다.
독일은 전반 음보마와 에토오 투톱을 앞세운 카메룬 공격에 수비가 번번이 뚫리자 축구가 아닌 '육탄전'으로 밀어붙이다 결국 전반 40분께 수비수인 라멜로브가 퇴장당해 10명이 싸우는 상황에서도 후반 5분 기습 공격으로 선제골을 얻은뒤 끝까지지켰다.
카메룬은 충분한 시간이 있었고 수적우위를 확보하고도 몸싸움을 거는 독일 선수들과 심판 판정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다 후반 수비수가 퇴장당하면서 추가골까지 허용해 자멸했다.
▲'운'도 큰 몫
독일이 4강까지 오르는데는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실력과 침착한 경기운영, 루디 푀일러 감독의 용병술 등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지만 운도 억세게 좋았다.
우선 조별리그 상대가 카메룬, 아일랜드,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비교적 다른강팀들에 비해 무난했던데다 첫 경기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8-0으로 대파한 것이 선수들이 지역예선에서의 부진을 털고 자신감을 회복하는데 큰 힘이 됐다.
이후 16강전에서 파라과이, 8강전에서 미국 등 '만만한' 팀들을 만나 격전을 치르지않고도 승리했고 이때문에 선수들이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도 행운이었다.
한국이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독일이 상대하기에 버거운 강팀들을 누르고 올라오느라 진을 뺐으나 독일은 '어부지리'만 취한 셈이 됐다. 한국이 지어놓은 진수성찬을 독일이 날름 받아먹은 격이다.
이때문에 독일이 우승한다면 월드컵의 반은 한국과 나눠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kim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