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남긴 성과물은 무엇인가. 네덜란드 출신으로 지난해 1월 대표팀에 부임한 히딩크 감독은 1년5개월간의 조련을 통해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냈지만 앞으로도 먼길을 가야할 한국축구는 그가 남긴 것을 차분히 추스려야 할 때가 됐다. `쪽집게 과외교사'가 되길 거부하며 한국축구의 체질개선을 시도했던 히딩크 감독은 우선 과학적인 훈련방법을 도입했다. 한국축구는 예전 유럽선수들에 비해 떨어지는 체격조건을 정신력과 체력으로 만회하려 했었지만 정신력을 매번 높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느냐와 경기에서 체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는 항상 문제가 됐다. 특히 "내내 열심히 달리기만 한다"는 부임 초기 히딩크 감독의 혹평에서 보듯 대표 선수들의 체력은 후반 20분이 지나면 바닥을 치기 마련이어서 매번 강팀들을만날때마다 번번이 막판 체력저하의 문제를 노출했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올초부터 실시해 온 파워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적 체력이 아닌 `90분간의 축구경기에 쓸 수 있는 체력'을 길러왔고 그것은 한국이 월드컵에서한수 위의 상대들을 강한 압박으로 제압한 원동력이 됐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의 회복시간(recovery time)을 단축하고 경기 중에 체력을 적절히 배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문가인 레이몬드 베르헤옌 트레이너를 영입한가운데 심박측정기로 측정된 치밀한 데이터를 활용했던 것이 열매를 맺었다. 이와 함께 한국축구는 히딩크 감독을 통해 또 세계축구의 조류에 부합하는 전술과 시스템을 이식하는데 성공했다는 점도 크나 큰 성과다. 수비전술에서 한국축구는 이전까지 주로 리베로 시스템을 사용하며 수비라인의 뒤에 스위퍼를 두는 전형을 사용했지만 히딩크 감독이 전술부문에서 가장 먼저 손을댄 것이 바로 이 부분. 히딩크 감독은 수비와 미드필드의 간격이 넓어지는 리베로 시스템으로는 수비진과 미드필드진간의 유기적인 수비조직력을 끌어내기 힘들고 또한 창조적인 공격도불가능하다는 지론 아래 `一'자 수비를 도입했다. 처음에 빼든 포백카드에 선수들이 적응하지 못하자 지난해 11월 `一'자 스리백으로 수비전형을 굳힌 히딩크 감독은 수비와 미드필드라인의 간격을 좁힌 가운데 적절한 존디펜스(지역방어)를 구사하면서 수비시스템의 선진화를 가져왔다. 히딩크 감독은 또 "공격수는 수비에 가담하지 않아도 욕은 안 먹는다"는 잘못된 관념을 깨뜨린 채 수비력을 갖추지 못한 선수는 외면하는 방법으로 10명의 필드플레이어가 모두 제 자리에서 수비에 가담하도록 만든 것도 성과의 하나. 또 선수들의 전술이해도를 높이는 작업과 동시에 여러 포지션을 맡을 수 있는 `멀티포지션 플레이어' 만들기에 주력한 것도 결국 큰 성과의 하나로 남았다. 과거 대표팀은 그 포지션의 주전선수 하나가 부상으로 나서지 못할 경우 정신적 공황에 빠지는 것은 물론 전체적인 전형까지도 손을 봐야할만큼 타격을 입었지만 히딩크 체제아래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부상을 돌발적인 상황이 아니라 언제고 찾아오는 `일상'의 범주에 포함시킨 히딩크 감독의 `멀티플레이어론'은 상대에 따른 전형의 변화에 선수들이 빨리 적응할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됐고 동시에 대표팀 전력의 안정화를 가져왔다. 한편 대표팀 선수선발과 관련해 철저히 실력을 중시했던 것은 그간 대표팀 구성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학연'이 설 자리를 잃게 했고 과감하게 신인들을 발굴해한국축구의 미래를 준비하게 했다는 것도 국내 축구지도자들이 가슴깊이 새겨야 할중요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대전=연합뉴스)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