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전문기자의 '세계경제 리뷰'] '기업의 블랙홀' 버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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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뮤다, 왠지 어감이 안좋다.
버뮤다 삼각지대(Bermuda triangle)라는 말에 익숙한 탓이리라.
미국 플로리다반도와 중미 푸에리토리코,버뮤다섬을 연결한 이 삼각지대에 붙은 별명은 마(魔)의 블랙홀.
지난 60년간 30대의 비행기와 40척의 선박이 이곳에서 사라졌다.
정확한 원인도, 뚜렷한 흔적도 없이.
버뮤다는 영국령으로 미 대륙 옆 대서양에 떠있는 울릉도 만한 섬이다.
인구는 6만여명.
이 작은 섬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얼마나 될까.
1백개나 1천개?
소도라고 얕봐선 안된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은 버뮤다를 위한 말이다.
버뮤다에 등록된 외국회사들은 현재 1만3천2백여개.
올들어서만도 약 2백개 외국회사들이 버뮤다로 주소를 옮겼다.
이 정도면 버뮤다를 '외국기업의 블랙홀'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버뮤다의 외국기업들은 대부분 주소만 옮겨 놓은 서류상의 회사(페이퍼컴퍼니)들이다.
실제로 사무실을 두고 있는 기업은 4백개에 불과하다.
버뮤다가 외국기업의 블랙홀이 된 것은 조세피난처(tax haven)이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법인세와 소득세가 없다.
기업은 단지 회사설립 수수료와 일부 잡세만 낸다.
조세피난처로서 버뮤다가 올리는 수입은 연간 10억달러, 국내총생산(GDP)의 약 40%다.
이 버뮤다블랙홀에 미국경제가 걸려들었다.
버뮤다로 호적을 옮기는 기업들로 정부세입이 줄고 있는 데다 이중 상당수가 경영부실로 월가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분식회계나 실적악화로 도산했거나 도산위기에 처한 엔론(에너지거래 업체)과 글로벌크로싱(통신업체) 타이코인터내셔널(전기.통신업체)이 그들이다.
이들은 미국정부에 세금은 내지 않지만 미국증시에 상장돼 있다.
따라서 이 기업들에 문제가 생기면 월가 투자자들만 고통받는다.
최근 미 검찰은 버뮤다에 본사나 지사를 둔 미 기업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미 의회는 의회대로 기업의 버뮤다 이전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강구 중이다.
이 참에 우리도 해외 조세피난처로 주소를 옮긴 기업들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 leehoo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