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산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세계적인 철강재 공급과잉에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이 수입 철강제품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면서 통상마찰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다. 세계 철강업체들 사이에서는 글로벌 통합과 제휴 바람도 거세다. 시장지배력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응책이다. 또 WTO(세계무역기구) 협정에 따라 오는 2004년부터는 철강제품의 관세 무세화가 실시된다. 국내 업체들은 이래저래 전에 없는 위험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올들어 철강 내수가격과 수출가격이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각 기업들이 활발한 해외투자로 통상마찰에 대비하고 신기술 개발로 신수요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철강산업이 국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국제철강협회(IISI)에 따르면 한국은 2000년 4천3백만t의 조강(쇳물)을 생산해 중국 1억4천8백만t, 일본 1억2백만t, 미국 9천만t, 러시아 5천7백만t, 독일 4천4백만t에 이어 세계 6위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철강업계의 해외투자 건수도 급증하고 있다. 90년대 이전까지 총 투자건수가 7건에 그쳤으나 지난해까지 누계로는 39건으로 늘어났다. 투자패턴 역시 바뀌고 있다. 원료개발 및 무역.유통 목적의 투자에서 벗어나 열연강판 등의 원자재를 현지 합작사에 공급한 다음 냉연강판 도금강판 강관 등의 가공품을 생산 판매하는 공격적인 해외 투자로 방향을 틀었다. 투자 대상국은 90년대엔 주로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철광석이나 석탄 같은 원재료 수입대상국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중국 및 동남아 국가 등 신흥 성장시장이 최대 투자국으로 부상했다. 전체 해외투자 건수의 70% 이상이 아시아 성장시장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이어서 업체들이 바짝 신경을 쓰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지난달 24일부터 6개월간 수입 쿼터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 7∼26%의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는 내용의 잠정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상태다. 국내 철강업체들이 중국 현지투자에 가속도를 붙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급증하는 중국의 철강 수요에 대응하면서 현지화로 수입 규제를 회피해 보자는 전략이다. 포스코는 중국에 1억5천만달러 가량을 투자해 스테인리스 컬러강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설비를 잇따라 증설하거나 신설하고 있다. 지난 1월 중국 광둥성 순더시에 위치한 '순덕포항도자강판(順德浦項鍍金辛鋼板)' 법인에 전기강판 연산 10만t, 컬러강판 연산 5만t 규모의 신설비를 착공했다. 지난 3월부터는 중국 장쑤성 장자강시 '장가항포항불수강(張家港浦項不銹鋼)' 법인에 연산 14만t 규모의 스테인리스 냉연공장 증설공사를 벌이고 있다. 투자비는 1억1천4백49만달러. 포스코 관계자는 "앞으로 경영진 간부 등의 현지인 채용을 확대하고 현지 파이낸싱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며 "현지 과실은 송금보다는 재투자에 활용해 상호 윈윈하는 경영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국제강도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한국동국제강상해(韓國東國製鋼上海)대표처'와 '한국연합철강상해(韓國聯合鐵鋼上海)대표처' 개소식을 가졌다. 조만간 상하이 대표처를 현지법인 체제로 전환하고 동국제강의 주력 제품인 후판제품 위주로 판매할 방침이다. 연합철강의 경우 장쑤성 우시에 연산 50만t 규모의 냉연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광둥성 광저우에 사무소를 개설했으며 최근에는 장쑤성 장인시에 표면처리강판 공장을 신설키로 했다. 그러나 글로벌화가 추진되고 있는 한편에서는 한국 철강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그동안의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성장으로 내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신제품과 신기술을 개발해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을 확대하는 것은 기본이고 장.단기 수급여건을 고려해 과잉설비 합리화도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통상마찰 파고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동북아 철강공동체를 주도적으로 구성하는 등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방안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오는 2004년 철강제품 관세 무세화에 대비한 철강수입동향 모니터링체제 구축, 저가수입 사전파악 및 산업피해 구제제도 활용 등이 절실하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광석 원료탄 고철 등 주요 원자재와 슬라브 빌릿 등 중간재의 관세를 아예 무세화해 국내 업체들의 원가를 절감시키고 수출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