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단위계획 수립과 용적률 축소로 휘청거렸던 서울시내 재건축 시장이 또 하나의 장벽에 부딪쳤다. 그동안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왔던 재건축 안전진단이 대폭 강화되면서 서울시가 "예비평가"를 통해 재건축 사업을 무더기로 보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재건축 추진을 통해 집값 상승 효과와 함께 개발이익까지 누리려던 상당수 아파트 및 연립주택들의 집값 거품이 사그라드는 것은 물론 재건축 사업추진을 잠정 중단하는 단지도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허술한 안전진단은 옛말=안전진단은 재건축 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과정이다. 안전진단 결과(D등급 이하)가 없으면 재건축 조합설립 인가 신청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요식절차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 조사결과 지난 88년부터 지난해까지 14년 동안 안전진단을 받은 1천68개 단지 가운데 재건축 불가판정을 받은 단지는 고작 4곳뿐이었다. 이렇다보니 재건축 조합(추진위원회)이나 시공사들은 그동안 안전진단을 '통과의례'로 여겨온 게 사실이다. 여기에다 정밀 안전진단에 앞서 일선 구청들이 자문단을 통해 실시한 육안조사에서도 '열에 하나 둘' 정도가 개·보수 판정을 받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두 달간 서울시 예비평가 결과 평가대상 중 70% 이상의 단지가 사는 데 문제가 없는 '멀쩡한 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안전진단이 재건축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짓는 변수로 등장한 셈이다. ◆재건축 시장 타격 클 듯=재건축 사업의 첫 단계인 안전진단이 까다로워짐에 따라 상당수 아파트 및 연립주택 재건축 사업 추진이 더뎌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시내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아파트 및 연립주택은 대략 1백여곳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안전진단 결과 D등급 이하 판정을 받아 실제로 재건축에 착수하는 단지는 종전보다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안전진단 신청도 하지 않은 채 시공사부터 정해 놓은 일부 단지들의 경우 재건축 초기단계부터 사업이 지연되는 등 진통을 겪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서울시는 이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지난달 초 재건축 결의에 앞서 안전진단을 의무화하도록 건교부에 건의해 놓은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무분별한 재건축을 막겠다는 서울시의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확인된 만큼 단지에 따라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제시하는 사업기간이 2∼3년 이상 늦어지는 곳도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묻지마 투자 경계해야=재건축 추진 소문만 믿고 안전진단조차 받지 않은 단지에 무턱대고 투자할 경우 자칫 금융비용 등 추가 자금 부담만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재건축 아파트나 연립주택 지분을 매입할 경우 미리 지구단위계획 수립 일정과 함께 안전진단 신청여부 또는 평가결과 등을 반드시 챙겨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재건축 사업은 사업기간과 함께 정부 정책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짙다"며 "지금은 규제강화에 무게가 실려있는 시기인 만큼 신중한 선별투자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재건축 시공사 선정이나 창립총회 전후의 분위기에 휩쓸려 투자하는 자세는 과감히 버리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나컨설팅 백준 사장은 "재건축 시장이 개발보다는 관리위주로 전반적인 조정을 받고 있는 만큼 조합설립 인가나 사업승인 등 인·허가를 받은 단지로 투자대상을 좁히는 게 안전하다"고 말했다. 강황식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