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류 냄새가 났던 소독약 연기더미 한가운데 홀로 놓인 것 같다. 무에 그리 좋았는지 기를 쓰고 좇아 다녔던 방역차 꽁무니의 그 소독약 연기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안개. 발끝 마저 흐릿하다. 바로 앞 사람의 원색 등산복이 길은 제대로 따르고 있음을 어림짐작케 할 뿐이다. 빗밑이 무거워 보여 정상에서의 해맞이는 포기. 다시 개잠자고 일어나 죽령 옛 또아리길 꼭대기에서 신발끈을 고쳐 맨 소백산(1천4백39.5m) 산행은 둥둥 떠 흐르는 안개방울을 헤치는 것으로 시작됐다. 연화봉까지 첫 세시간여 길. 안개는 녹록지 않은 그 산행에 조금은 위안이 됐다. 그래도 땡볕 아래 보다는 나을 듯 싶었고, 정상부 능선에 서면 구름위의 신선이 된 기분을 느낄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푸르게 열린 5월의 하늘을 배경으로 한 소백의 연분홍 철쭉에 대한 기대감이 발걸음에 힘을 보탰다. 길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다. 가장 무난한 코스라고 하는데도 30분도 안돼 발바닥이 화끈 달아오른다. 땅을 밟을수 없어서인지 숨도 턱까지 차오른다. 자그마한 키의 중년 아주머니가 씩씩하게 앞서 나간다. 흘깃 보는 눈길에 "이거, 텡쇠 아닌가" 하며 놀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매표원의 말대로 중간중간 활짝 핀 철쭉이 숨을 가라앉혀 준다. 구불구불한 길이 예전의 대관령 아흔아홉구비는 저리가라다. 4륜구동차도 용을 쓰며 기어오르다시피 한다. 엔진소리가 멀어지면서 사방은 또다시 하얀 적막에 싸인다. "밑에 길을 따라 가세요." 천문대인가 했던 통신중계소의 직원이 한참을 더 가야 한다고 손짓한다. 1천m 고지를 넘어선게 틀림없는데도 안개는 여전하다. 짧은 흙길 다음 시멘트포장길이 이어진다. 길 한쪽에 보호대를 치고, 산행객을 위한 좁은 길을 내두었다. 내리막이 오히려 힘겹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오른 것 같다. 안개가 옅어졌다. 생각했던 것 만큼 크지 않은 천문대의 양철돔이 하얗게 빛난다. 그 위로 파란 하늘이 얼핏얼핏 보인다. 드디어 연화봉이다. 이제 구름이 된 발밑의 안개를 꽃받침으로 한 연화가 봉긋 피어 있는 형상. 전망대와 자연탐방로가 잘 되어 있다. 일찍 나선 산행객이 희방사 계곡쪽에서도 올라온다. "어라, 없잖아. 너무 일렀나?" 봄에 마침표를 찍는 철쭉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땀을 훔치고 제1연화봉쪽으로 발을 옮긴다. 전형적인 산길, 굵지는 않지만 빽빽한 나무 사이의 공기가 상큼하다. 제1연화봉 밑의 안부. "어머, 여기는 있네." 울산에서 밤새 와 오전 4시부터 국망봉쪽으로 넘어왔다는 젊은 남녀의 얼굴이 환히 피어난다. 활짝 벌려진 철쭉꽃잎의 투명한 아침이슬방울이 볼록거울 되어 얼굴을 비친다. "자줏빛 바위 가에/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시면/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헌화가의 견우노옹은 수로부인의 미모에 반했을까. 위험한 절벽에 핀 철쭉의 수줍은 듯한 아름다움을 지나칠수 없었을까. '사랑의 기쁨'이란 철쭉의 꽃말처럼 번갈아 셔터를 누르는 젊은 남녀의 손길이 감미롭게 전해진다. 능선 왼편의 거대한 안개는 반대편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위로 치솟아 감긴다. 멀리 천문대와 통신중계소가 어울린 풍광이 그림 같다. 바위를 덮은 이끼에서 솔향이 나는 듯 하다. 오른편 단양쪽 산사면의 거대한 안개가 능선을 쓸고 넘어가면서 먼 산줄기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앞뒤로 지나치던 산행객들이 두팔을 크게 벌리고 심호흡을 한다. 산사면을 가득 메운 철쭉이 만개(26일께)하면 그야말로 천상화원의 꿈길이 될 것 같다. 그때쯤 주목군락(천연기념물 2백44호)이 어울려 더 멋진 비로봉 정상일대, 이어지는 국망봉까지의 능선길까지를 가득 메울 철쭉의 아름다움을 감당할수 있을까. 단양=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