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취화선'] 장승업, 그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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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1843~1897년).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페셔널 화가'(도올 김용옥)이자 현대 한국화 대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천재다.
호방한 필묵법과 정교한 묘사력으로 19세기 말 난세의 조선화단을 풍성하게 살찌운 주인공이다.
오원은 신세를 졌거나 마음에 든 사람에게는 그림으로 보답했다.
그의 그림은 양반네들 뿐 아니라 기녀, 고아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화명(畵名)이 절정에 이른 순간, 그는 홀연히 몸을 감춘다.
임권택 감독의 신작 '취화선(醉畵仙)'에서 오원의 인생은 작품 만큼이나 예술적이다.
금년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국내 영화사상 두번째로 진출한 작품답게 '절제의 미학'이 눈부신 영상에 그려진 전기영화다.
오원이 추구한 자유와 치열한 예술혼을 큰 줄기로 술과 여인들, 구한말 격동기 사건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직돼 있다.
도입부는 '스타화가' 오원(최민식)이 술잔을 들며 여러 선비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다.
곧 과거회상을 통해 어린시절 평생의 스승 김병문(안성기)과 해후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김 선비는 청계천 거지소굴 근처에서 매맞고 있던 소년을 구하고 그의 재주를 아껴 화가의 길로 인도한다.
소년은 자라면서 탁월한 그림솜씨로 산수(山水) 화조영모(花鳥翎毛:새와 짐승그림) 사군자(四君子) 등 당대 대표적인 양식을 확립한다.
그에겐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프로 화가로서의 면모도 있었다.
동거녀에게 일종의 '이혼위자료'로 매화그림을 그려주고, 고아소년 제자에게도 그림을 남겨 주며, 그림값으로 여비를 충당한다.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나만의 작품세계'를 추구한다.
현실참여적이었던 스승은 그에게 진경(眞景)을 권하지만 오원은 선경(仙景)을 고집한다.
그림은 그 자체로 대중에 위안을 준다는 소명의식에서다.
때문에 그는 격변의 시대 중심에서는 한걸음 벗어나 있다.
그렇다고 '안전지대'까지 피난한 것은 아니다.
병인박해(1866년) 때는 사랑하는 여인과 이별하고, 갑신정변(1884년)에서는 스승이 유배된다.
동학농민운동(1894년)은 이 영화에서 가장 에로틱한 장면과 겹쳐져 '오원의 멸대(滅代)'를 상징한다.
오원이 성관계 도중 후손을 낳아 달라고 말하는 순간 농민군이 들이닥치는 것이다.
불안한 시대는 그가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는데 걸림돌이었다.
여자들은 그의 열망과 제약을 대변한다.
첫 사랑인 양반댁 규수 소운(손예진)과는 신분차로 맺어지지 못한다.
기생출신의 진홍(김여진)과의 동거는 그의 방랑벽, 그녀의 서방질로 막을 내린다.
평생 사랑했던 기녀 매향(유호정)은 천주교신자인 탓에 쫓기는 신세였지만 오원의 예술을 이해하고 지향점을 제시한다.
그녀가 아끼는 그릇에서 오원은 '무욕(無欲)의 예술혼'을 깨닫는다.
도자기를 굽는 불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그가 굴속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은 오원이 대자유의 예술혼을 성취했음을 시사한다.
빼어난 영상미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광활한 개펄에 한 점으로 찍힌 사람, 하늘을 새까맣게 수놓는 되새떼, 황금 물결 넘실거리는 억새밭 등은 그 자체로 한폭의 한국화다.
임 감독의 브랜드였던 롱테이크(오래찍기)가 거의 없고 짧은 장면들로 속도감을 가져온다.
그러나 과다한 에피소드들은 선택과 집중의 결여로 감동을 저감시킨다.
10일 개봉.
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