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내가 죄인이구려. 죄인" 6.25전쟁이 터지면서 부인 이영희(73)씨와 다섯살배기 아들 창근(57)씨를 두고 평양을 떠나온 길영진(吉英眞.81) 할아버지는 부인과 아들의 쭈글쭈글한 손을 어루만지면서 어쩔줄을 몰랐다. 8.15해방 이후 평양시의 건설업체에서 일하던 길씨는 당시 북한 당국의 토지 국유화 조치로 땅을 빼앗긴데다 6.15전쟁이 발발하자 부인과 아들을 남겨둔채 이남으로 피난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아버지와 함께 화물열차를 타고 이남으로 피신했지만 반세기 동안 헤어지게 될 지는 꿈에도 몰랐다. 월남한 후 남쪽에서 재혼해 부인 영희씨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부인의 손을 쓰다듬으며 눈물만 흘릴 뿐 이었다. "고생했구려, 여보. 나도 없는데 창근이를 이만큼 키웠으니...할말이 없구려" '수절하고 있을까, 혹시 나처럼 이북에서 재혼하지 않았을까"라고 온갖 상념에 잠겨 금강산을 찾았지만 막상 부인을 만나자 이런 생각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50년이 넘게 고생해온 부인의 안쓰러움이 가슴에 북받쳐 올랐다. 그렇지만 부인 영희씨가 남편의 마음을 위로하듯 "창근이도 색시도 있고 애도 있어요"라고 소개하면서 아들 창근씨는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고생했니. 창근아 미안하다. 너도 이제 다 늙었구나" 눈물만 흘리며 말문을 열지 못하던 길씨는 헤어진 후 반세기만에 만난 아들에게 속죄라도 하듯 세월의 흔적이 담긴 주름진 손에서 손을 떼질 못했다. 김종선(金鍾瑄.83)씨는 북측 가족인 딸 현숙(58)과 아들 석염(55)씨의 손을 부여잡은채 미안한 마음에 차마 말을 잊지 못했다. "아버지, 어머니 이름은 아시나요. 어머니가 어디 사셨는지는 아세요" 딸 현숙씨는 아버지인 김씨에게 과거의 기억을 다그치듯 물었다. 그러나 노환으로 귀가 먼 아버지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만을 연발해 아들과 딸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아들 석영씨는 아버지에게 빛바랜 흑백사진을 꺼내보였다. 젊었을 적의 아버지와 석영씨의 어렸을 적 모습이다. 고향이 평남으로, 이북에서 철도 공무원으로 일해온 김씨는 "6.25가 발발하기전 이북에 아내와 아들, 두 딸을 남겨둔 채 혼자만 남쪽으로 내려온 뒤 헤어지게 돼평생의 한이 됐다"며 자식들과 작고한 아내에게 용서를 구했다. 현재 재혼해 아들, 딸 남매를 두고 있는 김씨는 "지난해에 두 차례나 이산상봉대상자로 간다, 못간다하는 소동을 겪어 상심이 너무 컸다"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토로하기도 했다. (금강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