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왜 강한가] (15) '무파벌주의' .. 學.地緣 철저 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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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내에서도 핵심 부서로 꼽히는 자금 경리 관리 담당 임원.
연간 수십조원의 캐시플로(현금흐름)를 관리하며 회사의 자금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이들의 이력서를 보면 속칭 '일류대'출신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자금팀장인 A 전무는 지방 사립대를 졸업했으며 경리팀장인 B전무는 지방 국립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경영지원팀 C상무는 상고 졸업후 입사,재직 도중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해 하버드에서 MBA를 마쳤다.
올해 초 정규인사에서 새로 임원(상무보)이 된 사람은 58명이지만 이중 서울대 출신은 5명에 불과하다.
연세대(4명) 고려대(3명)등 소위 3대명문을 합쳐도 12명으로 20% 수준에 그친다.
국내 상장사들에서 3대명문 출신이 차지하는 평균비율 47%(상장사협의회 조사)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반면 지방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넘어선다.
경북대 출신이 6명으로 가장 많고 인하대(5명),부산대(4명),광운대(3명) 등 순이다.
고졸 출신도 있다.
현재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는 사장급 이상 최고경영진 10명 중 2명은 지방대를 나왔다.
학벌보다는 비교적 능력 중심으로 승진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학연(學緣) 지연(地緣) 인연(人緣)의 배제=삼성전자에서 출신지역과 대학을 묻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정원조 구조본 상무는 "입사해서 20년 지났지만 어디서 대학 동문회한다고 오라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학교나 출신지역 등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락을 결정하는 면접 때는 신상명세서를 아예 참고하지 않는다.
일단 서류심사를 통과하면 서류는 제쳐두고 면접 점수 표만 놓고 집단 토론 형식의 면접에 들어간다.
명절에 상사에게 세배하러 가는 일도 없다.
삼성이 이같은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은 파벌은 언제든 집단 이기주의로 바뀔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이와 관련,"지역 이기주의,학교 이기주의,사업부 이기주의는 조직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여러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파벌 조성으로 오해받을 만한 행위는 자연스럽게 금기시됐다.
94년부터는 채용에서 아예 학력 제한이 철폐됐다.
이른바 열린 채용이다.
"인재의 좋고 나쁨은 학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갖고 있는 잠재능력에 있다"며 "학력에 상관없이 뽑고 능력을 발휘하면 대졸 사원과 동등하게 대우하라"고 한 이 회장의 지시가 배경이 됐다.
능력 위주의 인사 정책이 뿌리를 내리면서 파벌을 배격하는 문화가 더욱 공고해졌고 외부로부터 수혈되는 소위 '이방인'들도 늘게 됐다.
"능력있고 끼있는 사람은 가리지 않고 뽑으라"는 회장 지시에 따라 내부 또는 외부 발탁 인사케이스가 대폭 증가했다.
이런 사람이 하나 둘 늘다보니 족보를 따지는 자체가 거의 무의미해졌다.
현재 삼성전자 임원 4백21명 중 공채 출신은 66%.
나머지 34%는 외부에서 '수혈'됐다.
진대제 황창규 등 스타급 사장들도 비공채 출신이다.
삼성그룹은 신춘문예 당선자,디자인 소프트웨어 광고 수학경시대회 등 각종 경시대회 입상자,다국어 능통자들은 학벌에 상관없이 뽑는다.
이같은 '특별 채용'으로 삼성에 들어오는 사람만도 매년 1백명이 넘을 정도다.
95년 이후 채용 때마다 쓰고 있는 적성검사 프로그램 'SSAT' 역시 평범한 조직인보다 끼 있는 천재를 우대하는 삼성의 채용 특성을 상징하는 제도다.
응용능력 언어 수리 추리 공간지각 등 다섯가지 항목으로 나뉘어 있지만 과락(科落)은 없다.
한 항목에서 월등하다면 나머지 부분에서 부진해 종합점수가 낮더라도 채용한다는 뜻이다.
◆내부성장과 학력파괴=다양한 채용채널 등 인사정책의 변화와 함께 기업이 점차 글로벌화되고 있는 점도 파벌의 형성을 가로막는 토양이 되고 있다.
올해 상무보가 된 58명 중 해외에서 석·박사 이상의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9명으로 전체의 15%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체 승진자 1백48명 중 29명(20%)이 역시 해외 유수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따낸 사람들이었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삼성그룹 전체적으로 해외에서 MBA자격증을 딴 사람만 1백29명에 달한다.
지역전문가 코스를 거친 인원도 2천2백명(지난해말 그룹 기준)에 이른다.
고등학교 또는 같은 출신 지역 선·후배 사이라고 끌어주고 하다가는 촌놈 취급받기 딱 좋은 상황(인재개발팀 K과장)이라는 뜻이다.
올해는 데이비드 스틸 미래전략그룹내 해외 전략 고문을 외국인 중 처음으로 본사 임원인 상무보로 승진 발령했다.
5천주에 달하는 스톡옵션도 제공했다.
스틸 상무보는 국내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60여명의 외국인 중 첫 정규직 임원이 됐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신입사원에 대해서도 연봉을 차등 적용하는등 학력을 떠나 능력과 성과위주의 이익배분제를 확산할 방침이다.
구조본 인사팀 고위관계자는 "이 회장은 신입사원을 평가할 때도 S(Super)급제도를 도입하고,발탁 인사 역시 제한을 두지 말고 과감히 실시하라고 강조한다"며 "2∼3년 안에는 신입사원의 경우에도 최고 두배까지 연봉 차이가 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삼성으로서도 젊고 유능한 여성인력의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지 못해 남성위주의 기업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점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삼성전자 전체 임직원 4만6천여명 중 여성인력은 2만1천여명.
이중 생산직 근무자가 1만4천여명이고 나머지 7천명 가량은 마케팅 R&D 관리파트 등에 몸담고 있다.
물론 유능한 여성인력이 숱하게 많지만 여성임원은 단 한명 뿐이다.
그나마 사법고시 출신으로 특채된 케이스다.
이현봉 인사담당 부사장은 "과장 이상 간부직 여성사원이 96년 28명에서 지난해 2백19명으로 8배 가까이 늘어났다"며 "여성 리더십 교육과정을 개설하는 등 여성 고급인력을 체계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봉구 산업담당부국장(팀장),강현철,이익원,조주현,김성택,이심기,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