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최동호씨(고려대 교수)가 오랜만에 시집 '공놀이하는 달마'(민음사,1백10쪽,5천5백원)를 냈다. 1995년 '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을까' 이후 7년만이다. '공놀이하는 달마'는 '달마의 발길에 채여 멍든 시편'이라는 시인의 표현처럼 모든 시에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라는 부제를 달았다. 시인은 달마를 화두삼아 시를 써온 지 10년이 넘었다. 왜 달마에 그토록 매달리고 있는 걸까. '달빛은 놓아두고 귀신 붙은 나뭇잎만 쓸어간다/해묵은 육신에 생의 불꽃을 피우려는 선방에선/황금사자가 넘나드는 칸 너머 문풍지 바르르 몸을 떤다'('달빛 선원의 황금사자' 중에서) 시집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이 시는 가히 '선시(禪詩)'라 할 만큼 이미지가 과감하게 생략돼 있다. '설악의 시인'으로 불렸던 고 이성선 시인과의 추억이 담긴 시다. 최씨는 이 시인이 지난해 5월 유명을 달리하기 석달 전 내설악 백담사 위의 선원(무금선원)에서 그와 하룻밤 같이 머물렀다. 새벽녘에 깨어 문밖의 달빛이 나뭇잎을 쓸어 가는 소리와 선방의 깊은 정적을 느낀 소회를 이렇게 담은 것이다. 시인은 정신의 평정과 고요에 이르는 길을 달마를 통해 깨닫고 있다. '딱따구리는…'에서 보여줬던 '대상에 몰입하고 이를 통해 윤리적으로 자기 정화'하는 방식을 이번 시집에서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몸은 비록 세속적 삶 속에 머물러 있으나 정신은 '산정(山頂)'을 우러러보는 구도자의 길을 추구하는 셈이다. 그는 구도자의 길을 체험하기 위해 지난해 히말라야 산행을 다녀왔다. 거기서 석가모니가 왜 설산고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가 하는 점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만년설과 열대우림이라는 지극함의 극단에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만년설의 영적 힘 때문이었다고 털어놨다. '웅장한 산들의 신비에 매혹되는 것도 인간이고,자신의 삶에 수많은 의문을 갖는 것도 인간이다. 방황하고 길을 잃은 것도 인간이다. 삶에 대한 매혹을 갖지 않는다면 인간에 대한 매혹도 없을 것이요,시에 대한 매혹도 없을 것이다' 시인은 미처 시어로 쏟아낼 수 없었던 얘기를 담은 산문에서 달마의 발길에 채이면서 깨달은 바를 이렇게 덧붙였다. 이번 시집에 담긴 시들은 석가세존이 꽃 한송이를 들어 보이는 것처럼 선(禪)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