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병든기업 회생은 신규사업..全聖喆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우리 사회의 떡은 모두 기업이 키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이 투자를 잘하면 실업이 줄어들고,기업의 수출이 잘되면 국제수지가 좋아지고,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 물가가 안정되고,기업이 돈을 벌면 소액투자자들도 부자가 된다.
그래서 기업이 잘되게 하는 것은 당연히 경제 정책의 핵심이다.
기업 정책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잘 굴러가는 기업을 더욱 더 잘되게 하는 것이 그 첫째고,다른 하나는 망했거나 망해 가는 기업을 되살리는 일이다.
사실 전자는 사회의 많은 관심을 끌고 정책적 배려도 많이 받는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기업의 경영자들은 힘이 있고 목소리도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와 사회에 더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것은 망했거나 망해 가는 기업,즉 병든 기업이다.
기업 하나가 망한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실업자가 생기는 것은 물론 그 기업에 목을 대고 먹고 사는 수많은 하청업체 납품업자를 망하게 할 뿐 아니라,그 기업에 투자된 엄청난 재산을 고철덩어리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 기업이 잘 됐을 때의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그 손실은 더 크다.
그래서 살릴 수 있는 기업은 가능한 한 살려야 한다.
병든 기업을 살린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벤처다.
위험이 가득 찬 하나의 사업이다.
왜냐하면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대부분 큰 규모의 새로운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기업을 회생시키는 문제는 마치 하나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창의력,용의주도한 기획,과감한 집행,그리고 고뇌와 결단을 요한다.
자고로 모든 사업은 돈을 대는 사람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머리를 쥐어 짜며 열심히 일하고,그래서 좋은 결정들이 나오는 것이다.
돈은 내가 대는데 주요 결정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조리에도 맞지 않고 좋은 결정들이 나오기도 어렵다.
기업 회생이라는 사업에 돈은 누가 대는가? 당연히 채권자가 댄다.
이미 빌려 준 돈은 물론 앞으로 투자하는 돈도 다 채권자 돈이다.
그러면 기업 회생 작업의 주도권도 채권단이 잡는 것이 당연하다.
법원의 역할이란 이 과정에서 비리와 부정이 없고, 소액주주 또는 소액채권자의 이익이 부당하게 희생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데 그쳐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시스템은 법정관리 기업의 주도권을 채권단이 잡는 것이 아니라 법원이 잡게 돼 있다.
주요 결정을 법원이 다 한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CEO의 문제다.
CEO는 기업 회생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닛산자동차의 곤 회장,크라이슬러의 아이아코카 회장,한국전기초자의 서두칠 사장 등 CEO 한 사람에 의해 기업의 회생 여부가 결정된다고 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 가장 중요한 CEO 선임권을 누구에게 주어야 할 것인가? 당연히 이 기업 회생이라는 신규 사업에 돈을 댄 자,즉 그 리스크를 짊어진 채권자가 해야 한다.
CEO에 대한 보수 문제도 엄청나게 중요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아마도 망한 기업을 되살리는 일일 것이다.
노조와 싸워야 하고 채권자와 힘겨운 씨름을 해야 한다.
동시에 지치고 기가 빠진 직원들을 독려하여 히트치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한편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한번 병든 기업은 대부분의 경우 CEO가 거의 생명을 건 헌신을 하지 않으면 살아 나기 힘들다.
이를 위해서는 그 CEO가 병든 기업을 살리면 거의 팔자를 고칠 수 있을 정도로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미국은 그런 식으로 하고 있다.
성공적인 CEO가 가져 가는 보수는 아무리 많아도 그가 창출하는 가치의 몇십분의 1,몇백분의 1이다.
CEO 보수 문제는 그런 면에서 '기업 회생 사업'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며,이 사업의 주체인 채권단이 사업적으로 판단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기업 회생 사업'을 사업이 아니라 '작업'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 사업의 성공에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법정관리인들이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식으로 경영하는 곳이 많다.
이번에 법을 고칠 때 제대로 고쳤으면 한다.
scjun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