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은 귀찮은 존재' 싱가포르 정치인들에게 선물의 의미는 남다르다. 싱가포르 당국은 정치인 등 공인이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받는 모든 선물은 재무부에 신고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만년필이나 넥타이 등 하찮은 선물까지 신고해야 한다. 라오택순(劉德順) 전 의원이 전하는 에피소드 한 토막. 그는 현역 의원 시절 태국에 출장가 지인으로부터 유명브랜드 넥타이를 선물받았다. 그는 귀국후 국회 사무처직원에게 "넥타이를 선물 받았는데 신고하지 않아도 되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하지만 답은 '노(NO)'였다. 이 국회사무처 직원은 넥타이의 진품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신고해야 한다"면서 신고서류를 건넸다. 라오 전 의원은 하는 수 없이 이 넥타이를 재무부 담당직원에게 가져갔다. 그러나 재무부측은 "'가짜브랜드'이므로 신고할 필요가 없다"면서 되돌려 줬다. 받은 선물을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있다. 재무부에서 제 값을 주고 사면 된다. 라오 전의원이 한번은 일본의 공장 개막식에 참석했다가 멋진 사무라이 투구를 선물받았다. 자신의 이름이 투구에 새겨져 있고 아내도 마음에 든다고 해 사기로 마음먹었다. 1백 달러를 지불하고서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선물이 고가일 경우 제값을 주고 사기가 어렵다. 싱가포르 재무부는 선물 주인으로부터 외면당한 '선물'들은 연말에 경매에 부친다. 싱가포르 정치인들의 이같은 '선물기피증'은 총리와 총리직속 부패방지조사국(CPIB)의 매서운 감시의 눈 때문이다. '이 정도쯤이야'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숨기고 있다가 CPIB 감시망에 걸리는 날엔 그날로 정치생명이 끝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CPIB가 조사를 시작하면 "저승사자에 걸렸다"고 말한다. CPIB는 부패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거나 신고를 받게 되면 즉각 수사에 착수하고 이를 총리에게 보고한다. 혐의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수사자료 일체를 총리에게 보낸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선물 수수를 제한하는 규정 조차 없다. 다만 공직자윤리법은 공직자들이 외국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중 1백달러가 넘을 경우에 한해 국고에 귀속토록 하고 있을 뿐이다. 싱가포르=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